세상걷기

[스크랩] 비오는 날 수원화성에 서다

물에 불린 바나나 2010. 8. 28. 17:10
두 번째 정기모임에 잘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혼자 걸을 때보다는 아무래도 느낌이 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이 걷는다는 것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고 말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걷는 땅과 보는 사물에 대해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도 반가운 얼굴들이었습니다. 다들 조금씩 걱정하고 설레고..
새벽에야 잠이 들었지만 일찍 일어났습니다.
많이 그 날을 기다렸으니까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설래임과
내가 오늘 경험하게 될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이 절 흥분시켰습니다.
메일을 확인하니 전철로 동행하겠다는 분이 없기에 서울역으로
가지 않고 밥을 해먹고 영등포 역으로 나갔습니다. 혹시 전화가 오면
앞선 역에서 기다리면 되니까 일찍 나섰던 것이지요.

가랑비가 좀 내리네요.
우산을 가져가지 않을까 하다가 계단을 올라와 결국 우산을 들고 나섰습니다. 우산도 남다 주고 빌려주고 없었는데 찾아보니 허름한게 하나 있더라구요.모자를 쓰고 갈까 하다가 비가 좀 더 계속 올꺼같아 할수 없이 우산이 동행이되었어요. 봄옷을 입고 나갈려다가 비가 와서 청바지에 검은 후드 잠바를 걸쳤습니다. 바람이 불고 찰것 같아서요.전날 빌린 망원경만 달랑 메고 사뿐히 사뿐히 발걸음도 가볍게 내딛었습니다.

일요일 오전 교회에 가느라 달려가는 여자아이 그리고 두부, 콩나물 심부름을 나온 사내아이는 잠옷 바람으로 검은 봉지에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고 갑니다. 비는 좀 굵어지네요. 이렇게 평안하고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일요일을 시작한다는 자체가 너무 행복했습니다. 제가 그날 아침에 해야할일이란 단지 걸으면서 역사를 호흡하는 일이고 사람들과 인사 나누고 이야기를 하는 아주 단순한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니까요. 물론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영등포역까지는 한 20여분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역 플렛폼의 맨 앞 칸으로 갔습니다. 경부선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제 자리에는 인천이나 수원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대편에는 청량리, 의정부로 가려는 사람들. 저 멀리 하늘을 봅니다. 빗방울이 고압 전류 쪽으로 겁도 없이 부딪힙니다. 쇠기둥의 교차로 이루어진 철길 그리고 비 오는 일요일 아침의 작은 입김. 이 기묘한 어울림. 전철 안에서는 맘과 달리 졸음이 쏟아졌어요.. 밀린 잠을 좀 청하다가 밖을 바라보곤 했지요. 사람이 많지는 않았어요.

수원역의 혼잡함 속에 약속장소를 찾았습니다. 역밖에 나가지 않고 자세히 보니 보이더라구요. 제가 길을 건너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30분 정도... 입구에 있다가 옆 건물로 가서 서있었습니다. 혼자 기다릴려고 하니까... 아 근데 얼마 후에 횡단보도에 디지털 카메라를 든 여자 분이 보였습니다. 근데 사라졌어요. 그냥 다른곳에 가는 분 인줄 알았지요. 그런데 모임에 처음 나온 우리 일행이었습니다. ^^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화성 걷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전날 미리 자료를 읽어보고 공부를 좀 더 해올려고 했는데 못했구요. 어제하고 오늘 도서관에 가서 본 자료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수원화성에 전체적인 느낌은 무어랄까 군사용이 아니라 예술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울의 숭례문이나 동대문의 경우 문만 남아있지 성벽은 없잖아요. 둘레에 성벽이 있고 그밖에는 사람들이 바로 지금 살고 있고요. 더 잘 보존하고 가꾸어 옛 모습을 간직했으면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관광지를 만들고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과 경험을 이어받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욱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인데 이곳이야 그렇다고 쳐도 다른 지명도 없는 문화재는 더 보존이 안되고 있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어 안타까습니다.

요즘처럼 역사에 관심이 있던 때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도서관에가서 보니까 같은 시기에 건설된 도시중 상트페테스부르크, 워싱턴 등은 화성과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화성은 화성성역의궤라는 도시의 공사보고서가 있다는 점이라네요.
조선조 20대 정조대왕은 탕평책을 쓰고 규장각 등을 만드는 등 4대 세종과 더불어 조선왕조의 르네상스를 연 임금으로 기록이 된다고 하는 군요. 공사가 시작된 1794년은 프랑스 대혁명, 조지 워싱턴 초대 미국 대통령 당선 등 굵직한 세계사의 흐름속에 있었구요. 흥미롭죠?

영등포 도서관에 전화가 왔더랬죠. 엊그제 화성 걷다가 말예요. 책 반납하라고 ^^;; 그게 <한국의 발견-서울> 편과 <부끄러운 문화유산답사기>였거든요. 어제 반납하고 나오다가 새로 구입한책 목록에 정조의 화성건설(최홍규 글, 일지사)이 있길래 잠깐 보고 나왔고 오늘도 다시 가서 좀 보고 나왔어요. 아주 흥미로왔어요. 당장 빌리고 싶은데 연체되서.... ㅠㅠ 거기에 영, 정조 시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더라구요. 펄럭이는 깃발과 아름다운 곡선으로 자태를 뽐내는 그곳을 만들 때 연인원이 70만명이 동원되었다네요. 그리고 황실의 돈으로 품삯을 정확히 계산해주었다고도 하네요. 각종 기계가 사용이 되어서 효율성도 있었구요.

날씨 좋은 날에 혹은 눈발 날리는 날에도 한번 다시 오고 싶어요. 그래서 다시 한번 환상속에 어가 행렬을 구경하고 뒤주속에 죽음을 당한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마음 그리고 백성들을 향한 마음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성을 쌓고 집으로 돌아가는 백성들이 땀을 훔치며 주막에서 마시는 막걸리 잔 속의 삶의 여운도 느껴보고 싶구요. 그리고 난 역사 속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의 체취와 혼을 느끼고 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제 우리가 100여 년 후에 역사의 한 축으로 들어가겠지요. 역사속에 살고 있고 우리는 역사와 한 몸입니다. 그러고보면 얼마나 난 작은 사소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P.S 화성행궁(임금의 별장형태)은 576칸이라네요. 와.. 웃긴게 그날 다 보고 돌아나오니까 밖에 행랑매표소가 있는 것 있죠. 거기 창구 아가씨가 째려보는게 우리가 그냥 구경하고 나온 걸 알고 의심을 했는지도 모르죠. 하하. 참고로 화성의 둘레는 5,744m 걸음으로 따지면 4600보요 12리정도 된다는군요.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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