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일기.2

[스크랩] 광희문 신당동의 유래... 그리고 댄서들 분발합시다

물에 불린 바나나 2011. 11. 13. 00:48
---서울 중구 광희동2가에 광희문(光熙門)이 있다. 부근 무학동에는 옛날 아리랑고개가 있었다. 서울도성에는 4대문(四大門)과 4소문(四小門)이 있었는데, 오늘날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 동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 북문은 숙정문(肅靖門)이었다.
이들 4대문 사이사이에 소의문(昭義門:남대문과 서대문 사이), 창의문(彰義門:서대문과 북문 사이), 혜화문(惠化門:북문과 동대문 사이), 광희문(남대문과 동대문 사이)에 있다. 4소문이다.

광희문은 세조2년(1456년)에 오늘 날 장충동2가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타워호텔부근에 세워졌다. 예종 때 이 문이 풍수지리상으로 저승으로 가는 길목인 경복궁의 황청문(黃泉門)이 된다하여 막아버리고 현재의 위치에 새로운 문을 지으면서 '광희문'현판만 떼어서 옮겨달았다.

이 문은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불렸다. 이는 바로 옆에 청계천으로 빠지는 삼간수문(三間水門)과 오간수문(五間水門)이 있어, 도성안 대부분의 물이 이 문 부근으로 흘러나간데서 기인한다. 또, 일반 주민들이 시구문(屍口門)이라 부른 것은 성안의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반드시 광희문과 서소문으로만 나가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문을 지나서 신당동 화장터나 금호동 공동묘지로 가게 되므로 이 문을 '시체가 나가는 문' 이라는 뜻에서 '시구문'이라 하였다.

시신이 나가는 길목엔 통상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무당(巫堂)집이 즐비했는데, 무당골 또는 신당골(神堂谷)이라 부른 것이 오늘날 그 신당골이 신당동(新堂洞)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광희문 밖의 고개를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리아리(멀고 먼)한 고개'라는 뜻에서 아리랑고개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한번 가면 다시 못오는 북망산천과 서방정토로 가는 길목과도 같은 고개로 도성안 주민들에게 아로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는 이 시구문 밖에 시체가 즐비하게 쌓였다는 기록도 있으니, 처음 문을 세울 때부터 경복궁의 황천문이라 하여 옮긴 그 자리가 결국 숙명적으로 서울 백성들의 황천문이 된 꼴이다. 1907년 일제에 의해 한국군을 신식군대로 만든답시고 구 군대를 해산시키자 이에 불응한 군인 1천2백명이 의거를 일으켰다. 그들은 서소문과 남대문 사이의 성벽에서 왜군과 일대 접전을 벌였으나 120여명이 전사했다.

이때 가담했던 1천2백명의 병사 가족들이 생사를 확인하기위해 전사한 군인들의 시체를 모아둔 광희문 밖으로 몰려들어 울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당시 '서울 가거던 시구문 돌가루 긁어오라'는 시골사람들의 인사말이 있을 정도였다. 수백년 동안 수 많은 참사와 죽음을 지켜본 광희문이었기에 그 문의 돌가루가 영약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 광희문은 '광희'=명(明:밝고 빛남)이 되므로 '광명의 문'이라는 뜻이 될 뿐더러 조선조의 마지막 연호가 '광무(光武)'와 '융희(隆熙)'로서, 이 연호의 앞뒤 글자를 맞추면 '광희'문의 '光熙'와 일치하는 것도 신기하다.

광희(光熙)라는 이름이 사람의 시체가 마지막으로 나가는 문에다 또, 조선왕조의 마지막 종말을 암시해 주는 것만 같아 씁쓸한 생각마저 든다. 때문에 이 문에 숙명적으로 붙어다녔던 죽음의 냄새는 곧, 죽음이야 말로 영원한 '광명으로 통하는 문'이며, '영원의 밝은 길로 이어지는 문'이 아니던가... (이상 주워담은 글)


--->동대문 운동장옆 성동여실고 옆 사무실 근처에 있는 광희문을 지났습니다. 저녁을 선생님과 함게 자원활동하는 후배와 신당동에서 저녁을 먹었어요. 인천식당이라고 신당동 떡볶이 골목입구에 있는 식당인데 푸짐하고 맛있고 해서 종종 가는곳입니다. ^^ 벌서 3년 단골이죠. 인시도 후하고 반찬도 골고루 많이 나오는데 3500원밖에 안하거든요.

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 한번 그 문앞에 서서 안내판을 읽어보얐죠. 위의 내용은 검색해서 찾아 읽은 내용을 퍼왔습니다.

이제 빛바랜 안내판과 희미한 조명만큼이나 썰렁해보입니다. 거기서 남대
문 시장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날씨가 참 좋았죠. 좀 있으면황사가 있다는데 지금 많이 걸어 두어야겠어요. 지금 준비하는 일도 어느정도 차질없이 진행이 되어가는 듯해 지난주 악몽같은 사건에서 벋어나려고 하는 중입니다. 충무로 입구쪽 그러니까 퇴계로 5가쪽에는 한국 강연자협회라는 간판도 있네요.음... 참 특이한 다체도많아요. 얼마저에는 북한의 땅굴만 찾아다니는 열렬한 반공단체 사람들의모임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들은 종일 휴전선일대를 휘덧고 다닌다네요. 그리고 의ㅣㅁ이 가면 부대에 연락해 파보라고 하고... 군바리들도 아주 난처하다고 하더군요.

아시다시피 좀더 가면 충무로 애견센터가 있어요. 눈요기하긴 좋지요. 하지만 얼머전에 안좋은 소식도 뉴스로 듣고 알고 지내던 동생이 거기서 강아지 두마리 비싸게 주고 사서키우다가 한달지나자 연이어 죽었다는 이야기를들어서 불신감도 생깁니다. 너무 어린강아지를 어미에게 떼오놓고 팔으니 면역이 안생겨 슆게 벼이 걸리고요. 그 사후 애프터 서비스도 안되고 물론 일부이겠지만 말입니다. 어릴때야 개줄도 안채우고 좋지만 이미 태어날때 부터 개줄이란 족쇄를 가지고 태어난 강아지들... 전 집에서 예전에 점박이 커다란 포인터 하고 시커먼 도배르만을 키운적있는데요. 하여튼 개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아요. 물론 좋아도 하구요.

명동 밀리오레 야외무대에서 댄스그룹이 공연을 하기에 한 30분 정도 지켜보았답니다. 그런데 역시나.... 동대문 미리오레보다는 수준이 떨어집니다. 아무래도 유동인구도 거기보다 적구 경쟁력이 좀 낮아요. 무대장치도 동대문 밀리오레는 옆의 두타나 에이피엠보다 화려하고 멋지죠. 댄스그룹드의수준도 그렇게 느껴집니다. 왜그러냐면요. 동작의 일치라는기본적인것부터 연습부터 상대가 됮 않는것 같아요. 물론 의상은 잘 맞추어입고 나왔는데 너무 서너명의 호흡이.. 개인기란것이 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있을대 발휘대는 거인데 아직 딸리고 격차가 있습니다. 잘 추는 친구는 너무 튈려고 하고 못추는 친구는 어설프고... 실망입니다. 물론 기술도 떨어지구요. 댄스 전문가는 아니지만 학교때 사실 "야간분만"이란 댄스팀을 만들어 춤을 좀 춘적이 있었기도 하구요. 이름 재밌져? 밤새워 연습하고 그래서리... 그래도 비전문가이지만 제가 보기에 그들은 팀웍도 그렇고 기본 자세가....

여기서 비전문가의눈이 오히려 정확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번검찰인사 파동과 관련된 검찰개혁에 관해서도 비전문가가 보면서도... 으갸갸갸. 오릴오리얼러러러러럴. 먼소리여. 이거 쩝...^^;;

오다가 보니 용산의 삼가지역에 "도아가는 삼각지"를 부른 매혹의보이스 고 배호 선생님 아시잖아요. 그래서 배호로라고 이름을 지었다는데 아시나요? 그리고 오늘 안것은 더 재밌는게 그 아래길이 백범로더라구요...재밌네요.. 보너스.. 우리 사무실 근처 길이 당디길이라고 있어요.. 당디길이라.... 이건 제가 전에 일하던 금산과 논산의 작은 길이름과 같은데 .. 신기합니다. 길 하나 하나에도 사연과 역사가 살아 숨쉽니다. 신당동의 연유도 오늘 알았네요...
^^


명동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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