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재미

[스크랩] 나는 지금 발을 조금 쩔룩거리고 있습니다.

물에 불린 바나나 2011. 11. 13. 00:02
나는
지금 발을 조금 쩔룩거리고 있습니다.


오른쪽 발바닥에 물집이 크게 잡혔는데
그걸 떼어 냈더니 쓰리고 아픕니다.
왜 그렇게 되었냐구요? 운동을 너무 심하게 해서 그랬습니다.


사흘 전이군요,
제가 사는 도봉구에는 X -게임장이 있거든요.
암벽 타기, 인라인 묘기, 스케이트보드 묘기를
연습하고 시합하는 곳이거든요.
그 옆에 농구장이 있는데 거기서 농구를 사람들과 하다가
다섯 명씩 편을 갈라 풀 코트로 농구를 했는데
원래 시합을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같이 있는 후배랑
바람도 쐴겸 슬리퍼를 신고 슛 연습을 하러 갔다가
거기서 운동하던 사람들과 편을 갈라
시합을 하게 된 것이죠.


오, 그 친구들 농구 참 잘하는 사람들이더군요.
선수들 같았어요. 자유자재로 볼을 드리블하고
레이업슛에다가 중거리 슛 패스 그리고 리바운드까지
모두 기본기가 보통 이상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심판은 없지만 공이 아웃되거나 접촉이 있어서 파울이 되면
우리는 스스로 상대편에게 공을 넘겨줍니다.


특이한 농구 기술이 없는 전 주로 수비를 보았습니다.
다람쥐처럼 뛰어 다니며 수비를 하고 속공을 연결하고
하여간 악착같이 뛰어다녔습니다.
현란한 드리블과 터닝, 점프에 이은 고공 패스, 개인기를 펼쳐
좋은, 고난도의 멋진 슛이 나오면 같이 "오~ 나이스 플레이!"하며
박수를 쳐주고요.


해가 진시간에 옆의 X -게임장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여
열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숨을 고르며 바람같이 코트를 뛰어다닙니다.
금새 땀이 납니다. 웃통을 저도 벗어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어느덧 한 팀이 되어 우리는 점수를 내기 위해
뛰어다닙니다. 온몸이 땀에 졌습니다. 호흡이 좀 가빠집니다.


힘들지만 즐거웠습니다.
뛰는 것 하나는 자신이 있습니다.
걷는 것처럼 말입니다.
10점을 먼저 넣고 후반 중간이 되자 전 발바닥이 뭔가가
뜨겁게 마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뛰기가 불편했습니다. 몇 골을 남기고는 도저히
뛰어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아스팔트 바닥을 30분 넘게 맨발로 정신 없이 뛰어다닌 게
탈이 난 것입니다.
땀이 비같이 쏟아졌고 발바닥이 걸레처럼 되었지만
참 즐거운 신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좁은 화장실 옆에서 찬물로 서둘러 샤워를 했습니다.
새살이 돋으려면 좀 멀었지만 전 다시 또 늘 걷고 있습니다.
도봉산에도 다음주에 다시 오를 생각입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미친 듯이 땀을 쏟을 수 있어서 지금 행복합니다.


이렇게 운동을 하면서 사실 전
개인적인 이별의 상처로 아팠는데 그걸 잊으려 애씁니다.
훌훌 털어 버리려 애씁니다. 그리고 미소짓습니다.
가슴속에는 진득한 상처로 남아있지만 한발 빼고 그 흔적을 바라보면
그것이 나의 운명이 아닌가 하는 자학적인 쾌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시커멓고 파란 멍이 아마 들었을 겁니다. 한 사람과의 이별로 인해
그래도 뭐 어떻습니까. 내가 가야할 길을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약한 듯 하지만 전 아주 씩씩합니다. 체질인가 봅니다.
더욱 당당합니다. 초롱초롱합니다.
비를 원래 좋아하지만 지금처럼 매일 비가와도 즐겁습니다.


눅눅하고 습한 고만고만한 1호선 도봉역과 도봉산역 사이에
좀 외진 곳에 살지만 이곳이 점점 더 좋아집니다.
멋진 도봉산도 눈앞이고 산에는 계곡도 있고
바로 옆에는 농구장도 있고 멋진 1호선 도봉산역도 있고 시원하고
커다란 7호선 통 유리를 통해 바라보는 새벽의 한강 한밤중의 한강도 바라보고요.


좋은 날은 지금 가슴 아픈 때인 것 같습니다.
무작정 좋아하다가 헤어지고 하염없이 그리워 하다가 슬퍼지고
또 아픈 가슴으로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고 좀 비틀거리지만
또 달려가고 걸으며 내 방식대로 살면서
이젠 추억이 된 그대를 생각하며 하얀 미소짓고....


상처를 받아서, 아니 내가 상처를 주었다면 상처를 줄수 있어서
사랑했음으로, 아니 내가 사랑을 받았다면 사랑받을 수 있었기에
지금이
좋은 날인 것 같습니다.


많이 가슴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땀흘릴 수 있어서
쩔룩거리며 좀 천천히 걷고 주위를 바라볼 수 있어서
지금이
좋은 날인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발을 조금 쩔룩거리고있습니다.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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