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길

[스크랩] 오강

물에 불린 바나나 2011. 11. 12. 22:25
<오강>

어제 찬바람이 아주 많이 불어서 겨울이 온 것 아닌가하고 놀랐습니다.
찬 겨울이 다가오면, 점점 추워지면 생각나는 것이 오강(요강)입니다.
원래 요강이 바른 말이고 오강이 사투리인 것 같습니다.
전 집에서 오강이라고 많이 불렀고 들어서 그냥 사투리를 쓰겠습니다.

내 할머니, 석월림 할머니는 항상 아침에 오강을
수돗가의 물에 헹궈 뒤집어 놓았다가
잠자리에 들기전 밤에 방문 옆에 들여놓으셨습니다.
변소는 대문 옆에 있었고 작은 마당을 가로질로 가야했었기에
소변을 보기 불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꼼지락 거리기 불편할때인 겨울에는 오강이 참 편합니다.
그것은 할머니의 할머니부터 보아왔고 사용해왔던 것일 겝니다.
집에서 오래 쓰던 스텐레스 오강은 잘 깨지지도 않고 가볍고 편리합니다.
전 어려서부터 돌벌러 나가 늦게 들어오시는 부모님대신
할머니랑 같이 잠을 많이 잤습니다.
제대하고서도 30이 되어서도 할머니랑 많이 같이 잠을 잤습니다.

겨울 깊은 밤 제가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나가면 할머니가
오강에 앉아계시면 난 잠시 기다렸다가 할머니가 일어나셔서
방에 들어가시면 제가 다시 오강에 소변을 보았고 키가 할머니보다
더 커져서는 오강을 들고 소변을 보기도했습니다.

간혹 술을 많이 드신 할머니께서 피곤하시거나 아프셨을때는
오강이 비워지지 않고 며칠간 마루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득 차 있을 때는 무거워서 오강을 들지 못하고
그냥 서서 혹은 대충 쪼그려 앉아 오강에 소변을 보았습니다.
졸리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구요. 그래서 다음날 마루 바닥에
냄새가 나고 흘린 자국이 남아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할머니가 지금은 미국에 간 고모 후미꼬의 인천집에 가셨을때나
제주도 조카집에 놀러갔을때 또는
고아가 된 친정 조카들의 집인 대구에 갔을 때
그리고 술에 많이 취하셔서 선화노인회관에서 주무실 때
그러니까 집에 들어오시지 않았을 때는 저 혼자 오강을 들여놓고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물론 할머니 이불도 항상 펴놓고 그랬죠.
어른들 이부자리를 펴 놓는건 그건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입이다.
항상 어른들 이부자리는 펴놓고 잠을 잤죠.
언제 들어오실지 모르니까요.

그러다가 경로당에서 할머니를 업고 찬 겨울날
밤 골목을 걸어 집에 들어와 이불에 눕히기도 했었습니다.
반대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저를 눕히고 재운 것도 할머니였습니다.
집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자고 새벽에 잠을 자고 들어가면
제자리에 언제나 이불이 벼개와 함께 잘 펴져있곤 했었지요.

내 할머니가 이제 돌아가셔서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하네요.
저도 돌아오는 겨울이 이곳 도봉산 지하방에
들어와서는 처음이고 서울와서는 세 번째 겨울을 저도 준비합니다.
지난 겨울에는 할머니에게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지금 한참 일이다 작업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좀 힘이 드는데 올해가기전에 고향에 내려가면
할머니 산소에 좀 다녀와야겠네요. 담배 요구르트 막거리 사가지고요.
그리고 지금 집 어딘가에 아직도 그때 오강이 있나 찾아봐야겠습니다.

전 화장실이 있는 방에서 살고 싶은 생각보다 더 간절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할머니랑 아랫목에 서로 발 밀어 넣으며
오강에 오줌 시원하게 누며 하룻밤 다시 곤하게 자고 싶습니다.
그럼아침에 일어나 간밤에 푹 잘 잘 잤다고 웃으며 말할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계신 산의 단풍도 지금 아주 최고로 예쁠 것입니다.
아마 오늘은 막걸리 한잔 쌍둥이 할아버지,
아이스께끼 할아버지, 말집 할머니,점쟁이 할머니 등
용두동 날맹이의 동네 친구 분들과 나누고 계셨겠지요.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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