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일기.2

[스크랩] 사라진 우주선

물에 불린 바나나 2011. 10. 24. 00:51


 
                  "누렁아, 우리의 우주선은 아마도 저기 달나라에 무사히 착륙했을거야, 그치?"
              <사라진 우주선 -추석 SOLO 걷기 후기>
난 바지를 걷고 양손에 양말과 신발을 들고 바지가랑이를 접어서 
늦은 물놀이를 하였다. 하얀 철새 때들도 한가위의 여유를 즐긴다.
맨발로 비가 많이 와 물이 불은 강가를 가로질러 좀 걷고 있었다.
복수교에서 8km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그러나 아침 10시부터 걸어서 시내를 둘러 돌아보고 왔으니
족히 삼십리는 넘는 길이었을 것이다.
친구는 수뱅이 길을 건널 때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미군부대에서 얻어온 밥을 가지고 오다가
불어난 강물에 떠내려 갈 뻔했다는 그 다리를 건넜다.
나 역시 그 다리 아래에서 물놀이도 했었고 
냉이며 쑥 등 봄나물도 뜯었었다. 
내가 살던 집은 벌써 아파트 공사장이 되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이미 고층 아파트가 되어 사람이 살고 있다.
내가 살던 날맹이(언덕길) 작은 집 앞뒤로는 
여자중학교 여자고등학교가 있었다.
머리를 갈래로 땋아 검은 치마와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가던 누나들...

 "나는 이제 어느덧 삼십대 중반 생물적인 아저씨가 되어 
  유년기와 십대의 대부분을 보낸 곳을 둘러본다. 신호등도 가끔 물리적으로 그냥 건너며..."
S초등학교 운동장.
거기 철봉이 있었고 5층 짜리 정글짐이 있었고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었다.
운동회때 친구는 한번도 어머니가 오지 않았고 
난 단 한번 그 학교 입구 
운동장에서 어머니가 싸오신 김밥과 사이다와 찐 계란을 먹었다. 
그리고 달리기에서 2등인가 3등을 했다. 
파랗게 손목에 도장을 찍었고 노트를 부상으로 받았다. 
난 청군이었다. 
H여고 뒷 쓰레기장에서 볼펜을 주었고 
불장난을 하다가 소사(수위아저씨)아저씨에게 잡혀 혼나기도 했었다.
배가 고파 아카시아 꽃을 훑어 먹고 
빨간 사루비아 꽃의 꿀을 따먹기도 했고 
학교 연못의 금붕어를 몰래 잡기도 했다. 
담장을 넘어온 테니스장의 공을 훔쳐 야구도 했었다. 
그리고 우주선 모양으로 고무줄을 풀어 반을 접어 
화약을 넣는 장난감을 하늘로 던져 올렸다. 
힘껏 하늘을 향해 던지면 언제나 그랬듯이 
허공에 솟구쳐 올랐다가 
아스팔트에 추락해 "빵!"하고 소리와 달콤하고 매캐한 냄새가 
작은 연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한번은 그렇게 잘나던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늘높이 올라간 내 우주선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곧 있을 추석 송편을 생각하며 제사 지낸 후 제수용 닭을 
시장 통의 통닭 집에 맡겨 
바삭바삭한 통닭을 만들어 먹을 기대로 차있기는 했지만 
하늘로 힘차게 던졌는데 나의 화약 우주선은 당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실종, 지구로 귀환하지 못한지지 20년이 훨씬 넘었다.... 
거기 비탈진 학교 입구에 가면 난 항상 사라진 우주선을 찾아보았다.
그 날도 내가 마법에 걸린 듯 집을 나와 시내 곳곳을 휘저은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난 어느새 거기에 가 있었었다. 
그리고 다시 그 하늘로 사라진 우주선을 찾아본다.  
물살이 요새 자주 온 비 때문에 아주 세다.
비가 그친 뒤의 따가운 가을 햇살이 따갑다. 
세찬 물살이 만드는 시원함이 발목에 찌릿하게 전해진다.
자갈을 밟으면 지압이 따로 없다. 시원하다 못해 시큼해진다.
그렇게 난 비릿한 물 냄새를 맡으면서 이곳 저곳을 좀 오래 걸었다. 
친구와 나는 물가에 나와서 자갈밭에 앉아 발을 말리면서 오랫동안 
그렇게 흘러가는 물을 보면서 우리의 어린 시절을 되새김질하였다.
소주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 지나간  어린 시절, 
꿈은 무한했고 생활은 누구나 그럿듯이 가난했고 
학교나 제도와 시대에 두려워했고 
사람들로 인해 작은 일에 행복하고 절망했던 
그 시절의 공간과 사람들을 그려보며 살며시 미소지었다.
돌아갈 수 없는 그 곳과 
볼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돌이킬수 없지만 기억한켠에 아련히 자리잡은
그리움과 삶에 대한 연민으로 한숨지었다.
그렇게 삶은 추억과 그리움과 사랑으로 계속되는 것이겠지... 

   "마이 올드 하우스, 
    내가 다니던 놀던 학교 , 
    나의 어린 시절 옛 친구들
    이젠 머무름 없이 더욱 더 멀리 사라져간다. 아스라히..."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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