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협의회

찔레꽃 - 이외수(2002-07-13 오후 7:17:17)

물에 불린 바나나 2008. 11. 26. 00:32

찔레꽃 2002-07-13 오후 7:17:17
황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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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 이외수


마음만으로는
사랑을 할 수 없어
밤마다 편지를 썼었지
서랍을 열면
우울한 스무살의 가슴앓이
사어들만 수북히 쌓여 있었지

입대하기 전날 아무도 몰래
편지를 모두 잘게 찢어
그대 집 담벼락 밑에 깊이 묻고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으리
나는 바삐 걸었네

황산벌 황사바람 속에서도
바래지 않던 추억
수시로 가시처럼 날카롭게
되살아나서
하루에도 몇 번씩
파고들던 아픔이여
그래도 세월은 가고 있었네

제대해서 돌아와
다시 편지를 쓰려는데
그대는 하늘나라 먼 길을 떠났다던가
보름달은 환하게 밝아 있고
편지를 잘게 찢어 묻은 그 자리
찔레꽃이 무더기로 핀 이유를
비로소 알아내고 혼자 울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