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재미

[스크랩] 초딩 뚜벅이

물에 불린 바나나 2007. 4. 15. 11:16
초딩 뚜벅이

연말이 되니까...
또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주위에서 그러니까(실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지만)
어릴적 생각이 납니다.
지난번 이야기를 할려고 했던 초딩 뚜벅이라는 이야기를 할까 해요.
애초부터 뚜벅이였던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나 자신 또한 그렇습니다.

-용두동 고개
내가 태어난 곳은 대전의 용두동 날맹이(고개)입니다.
뒤로는 육이오 이후부터 피난민들이 살았다고 들은 수용소라는 곳입니다.
지금은 아파트가 건설중이고요. 여기도 재개발 문제로
피디수첩에서 보도가 되고 그랬던 곳이죠.
거긴 28, 29 나중에 828, 829 버스 두 대가 지나가는
곳이고 시내에서도 그리 멀지 않지만 서민들이
모여사는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전 여기서 30여년을 살았습니다...

-6학년때 신문 배달하다
제가 다녔던 서대전 초등학교. 우리때는 국민학교 라고 불렸던 곳,
집에서 10분 거리였습니다. 그리 멀지 않았죠.
그래서 매일 학교를 걸엇 다녔고 또
근처에 호수돈 여중,고등학교와 충남여중,고등학교가 제 놀이터였었죠.
하여간 초등학교때부터 전 이리 저리 잘 돌아다닌 것 같습니다.
부모님도 일 때문에 늦게 돌아오셨기도 했고
워낙 잘 놀러다닌 것 같아요. 그렇다고 친구를 많이 사귄 것은 아니고
버스를 타고 저 멀리 변두리 강가나 낵가에 가서 혼자
싸돌아다니거나 무엇을 구경하러 돌아다녔어요.
그러다가 6학년때 결심했던 일인지 몰라도 일을 저질렀습니다.
바로 신문을 배달하기 시작한거죠.
구두닦을려고 엉성한 구두통 만들어 대전역 나갈려다 말고 처음으로
일을 할려고 나선 것이 그때였습니다. 물론 친구들의 시선이 제일
무서웠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집에서
가까운 곳에 보급소가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또 유혹했던 것이 신문을 돌리면 장학금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 한달 정도 밖에 일을 안 했는대 대전역 옆의
철도청 관사에서 장학금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돈으로 만원이었는데 얼마 안했다고 보급소 소장님이
5천원만 주시더라구요, 아, 왕자표 크레파스는 그대로 제가 가져올 수 있었죠.
그때가 1981년이었습니다. 그때 5천원 가져오면서 용두동 날맹이를 넘으면서
어두운 밤길을 혼자 넘으면서 얼마나 뿌듯했던지.... 하여간 그때부터
돈을 받으면 계속 어머니께 갖다 드린 것 같아요.

-국일관에서 받은 신발
제가 신문을 돌리던 곳은 시내 혼잡한 상권이었어요.
술집도 많았고 상가도 많았고 근처에 동양백화점이라고 고층 대형 백화점이
새로 생긴 곳이죠. 처음 신문 배달지역 인수 받으려고 소장님하고 비오는
날 신문 돌리다가 먹은 칼국수, 그때 처음 칼국수란 이름을 들었어요.
계란이 풀어진 국물에 봄날이지만 추운 몸을 녹이면서 먹던 그 맛.. 아!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식당이름이 선화식당 이었죠.
하여간 그래서 전 6학년 때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 못하고 놀지도 제대로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신문을 많이 보고 한자공부를 하고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제가 신문을 돌리던 곳 중에 국일관이라는 지금도 건물이 있는 고급
요정이 있었어요. 거기 가면 언제나 한복을 입은 마담이나
나비넥타이 웨이터가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하여간 월말에는
신문대금 수금도 하러 다니고 그랬죠. 추석전날인가 그랬어요.
나이도 어린게 기특하게 신문 배달한다고 칭찬을 들었던거 같아요.
그 국일관에서 "신문이요" 하고 가는데 절 부르더군요. 그러더니
고운 눈부신 한복을 입은 아가씨가(아줌아인가? ^^;) 제게
무슨 선물 같은 것을 주는 것이예요. 아, 아직 식지 않은
호떡봉지와 같이 말입니다. 저더러 가져가라는 것이예요. "고맙습니다"
하여간 그날 다른 가게서는 음료수도 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기분이 좋았죠. 보급소에 오니까 다른 아이들도 하나둘 선물을 받아 오더라구요.
성탄절도 그랬던 것 같아요. 장갑도 받고 목도리도 받고...
하여간 그때는 신문배달하는 사람에게 그런 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여간 그래서 많이 걸어다녔죠..이리저리 그래서 시내의 골목길을
잘 알게 된거 같아요. 그때부터 한번 간길이나 상점등은 잘 기억을 하게
된거 같아요. 그렇게 10개월 정도를 일을 한 것 같습니다. 흘린 땀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작은 진리 그리고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의 모습을 보고 배운 것이 많아요. 지금도 집에 내려가면 그 길을 걷게 됩니다.
이제는 헐린 건물든 쇠락한 동네와 상점. 아 그로고보니 학교정문앞 길
건너 용두시장(조폭마누라2편 촬영지) 들어가는 곳에 청산문구라고 있는데
그 문구 아저씨는 그대로 계시네요. 사고 싶던 장난감 프라모델도 많이 사고
쫀디기도 사먹고 그랬는데 아직 그 아저씨는 흰머리의
할아버지가 돼서 계속 아이들에게 문구와 장난감을 파시며 거기 계시네요...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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