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일기.2

[스크랩] 가을밤 소낙비를 흠뻑 맞는다

물에 불린 바나나 2011. 11. 12.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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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 소낙비를 맞으며...>
세상의 반을 지배하는 어두운 밤이 
시월 들어서 점점 일찍 찾아오고 있습니다.
빛은 땅으로 내려와 날개를 감추고 밤이 됩니다.
어둠이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을 비추던 빛이 
다시 날개를 접어 산으로 강과 바다로 그리고 땅으로 이불을 펼치면 
밤, 이것이 사람 세상의 쉼, 바로 밤인 것입니다.  
깊은 가을밤, 밝은 빛의 유혹과 사귐으로 형형색색으로 변한
산과 들도 시월 하순의 그믐달빛 아래서 그 자태를 숨기고 잠을 자면서
은밀한 사랑의 휴식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깜빡이는 북극성 하나마져도 길을 떠났는지 보이지 않고
회색 구름이 뭉실뭉실 먼바다를 건너왔는지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순간 빠르게 검고 회색빛 가을 밤하늘에서
후두두둑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쿠르르릉 콰-앙!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연이어 이곳 마을 전체가
찰나에 환하게 밝아졌다가 어둠으로 다시 사그러 듭니다.
유리에 쩌억 하고 금이 가듯 건물들은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연이어 여름소나기같이 거세게 내리던 가을 밤 소낙비는 그렇게
가을의 건조와 황량함을 밀어내고 그리움을 더욱 짙게 물들입니다.
늦은 밤길을 소주 몇 잔에 취해 걸어온 남자는
밤 1시가 넘어서 찾아온 이 소낙비가 무지하게 반갑습니다.
빨래를 걷어야하는 줄도 모르고 대문에 서서 연신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비를 좀 맞아도 주고 웃어줍니다. 
아직 여린 입김이 비실비실 입가의 잔주름을 타고나옵니다.
아마 충혈된 남자의 눈가의 주름에서도 가는 
미련한 미소가 새어나옵니다.
남자는 그렇게 한동안 비를 맞고 살며시 웃어봅니다.
마른 남자의 얼굴, 두 볼의 살가죽 위로 빗물이 튑니다.
충혈된 눈가에서는 어느새 빗물 아닌 
끈적이는 바보 같은 것이 찔끔 나옵니다.
비가 그쳐도 그는 오랫동안 그렇게 거기에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가을 밤 소낙비를 다시 기다리며, 
소낙비가 내리는 가을밤을 다시 품에 안으려...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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