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가 사람들 >
극장에 화장을 시키는 붓의 마술사- 미술부장 박치덕(아카데미 극장)
옛날부터 영화판 그러니까 극장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들의 1950, 60년대는 먹고
살기 어려웠던 때라 떼돈을 벌었던 극장 주위에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한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까
지 들끓었다고 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극장에서 먹고 살기 위해 기술을 배우거나 주위에 진을 치는 사람들
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있다면 단지 영화가 좋아서 일 것이다.
그 어려운 시절부터 현재까지 극장가 그것도 극장가의 문패라 할 수 있는 영화 간판을 멋지게 꾸미고 있는
박치덕(아카데미) 극장 미술부장을 만나본다. 눈가의 잔주름만큼이나 이쪽 대전지역의 극장가에서는 잔뼈가
굵은 우리시대의 장인의 체취가 편안한 그의 웃음에서 배어나왔다. 그는 대전에서 나서 줄곧 생활하였고 영
화판에서 줄곧 생활한 오리지널 대전 토박이이다. 한편 놀라운 것은 아카데미 극장에서 지난 1966년부터 그
러니까 33년 동안이나 붓으로 극장의 간판만을 그려온 외길 인생이었다는 점이다.
한 직장에서 그것도 이동이 심한 극장가에서 33년씩이나 같은 일을 하였다니 아카데미 극장의 터줏대감이라
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카데미 극장 지하 주차장 한쪽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순간에 마침 그는 다음
개봉 예정작인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8mm>라는 작품의 작업을 위한 기초화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황 : 어떤 배우가 그리기 편한가?
박 : 예전 배우 중에는 김지미, 지금은 한석규가 참 좋은 틀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한다. 윤곽이 뚜렷한 사
람들이 이미지가 강하듯이 윤곽이 뚜렷해야 그리기 편하다. 결코 얼굴이 매끈하고 이쁜 배우가 그리기 쉬운
얼굴은 아니다.
황 : 보통 얼마나 많은 배우들의 얼굴이 그의 붓을 통해서 탄생하나? 때론 슬프게,
때론 아련하게 그리고 때로는 박력 있게....
박 : 지금은 일년에 50-60개 정도의 간판을 그린다.
그렇게 말하는 그가 사실상 미술이나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고 공부하지는 않았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황 : 요즘에는 간판을 단숨에 컴퓨터로 뽑아서 극장에 걸고 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박 : 아무래도 보기에 딱, 극장이다라는 운치나 풍경은 수작업을 못 따라오는 것 같다.
황 : 자신도 계속 그림을 그려야 감(感)을 잊지 않는다고 하는데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서 섭섭하지
않나?
박 : 천직으로 알고 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 천직으로 믿고 하는 일이 아무 조건
없이 지켜나갈 수 있는 거 같다.
간단한 그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극장다운 분위기를 꾸며주는 것은 인간적인 냄새와 물감냄새가 일구어낸 영
화 간판이 아닌가라는 그의 말을 상기해 본다. 당장 극장 앞에 서게 되면 영화 간판이 눈에 띄게 되고 그것
은 영화를 보기 전, 그리고 보고 난 후 관객과의 일종의 교감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자로 잰 듯 말끔하게
뽑아낸 컴퓨터 그래픽 포스터에서 도무지 그러한 교감 따위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3원색인 빨강, 노랑, 파랑과 녹색, 검정, 흰색의 페인트를 이용해 현재 아카데미 극장 450*250의 간판 두개
와 아카데미 극장에서 운영하는 수정아트홀의 간판까지 혼자 작업하는 그는 놀라운 화장술로 오늘도 대전
극장가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글ㆍ황규석/C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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