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의 재치 콩트에 버무려진 추천 여행지 22곳
시골학교 출신의 영자씨는 손위 동서가 둘 있는 막내며느리다. 동서 둘은 모두 명문대학 출신으로 각각 미술과 피아노를 전공했다. 시댁에 갈 때마다 주눅이 드는 영자씨. 영자씨는 시댁 식구에게 있어 가정부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존재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온 식구가 모여 앉아 퀴즈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 영자씨는 한 문제라도 맞혀 자신이 무식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눈을 부릅떴다. 마침 베토벤에 관한 문제가 나와 “운명!”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피아노 전공의 손위 동서가 “동서, 그게 아니지, 로망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야. 베토벤을 모델로 쓴 소설이지”하는 게 아닌가.
다음 문제는 사과에 관한 문제였다. ‘인류 역사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세 종류의 사과는?’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영자는 힘차게 외쳤다. “홍옥, 국광, 부사”그러자 옆에 있던 작은 동서가 한 마디 한다. “동서, 그건 에덴동산의 사과, 뉴턴의 사과, 윌리엄 텔의 사과야” 옆에 있던 남편이 큰소리로 면박을 준다 “에그, 잠자코 있으면 본전이나 찾지”막내 시누이는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는다. (…) 영자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대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일, 그것을 스스로 찾기로 했다. 인사동 나들이. 그것은 평범한 일상에 눈부신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었다. (본문 중에서)
국내 최대의 인공 호수 공원인 일산 호수공원. 가까운 곳에서 레저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방송작가인 조연경씨가 주부 혼자서 휴식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지침서 ‘단돈 1만원으로 즐기는 짧은 여자여행’(조연경 지음/서울문화사/1만원)을 펴냈다.
저자는 방송작가답게 한국 주부들이 가장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코믹하고 리얼한 콩트로 구성하고 그 상황에 맞는 여행지를 추천해 준다. 물론 ‘단돈 1만원’과 ‘당일치기여행’이라는 제약이 붙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하루 동안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 22곳이 집안에만 갇혀 있는 여자들의 일상 탈출구가 되어준다.
영화·책·커피가 있는 삼성동 코엑스, 골동품과 갤러리가 있어 문화의 향기로 가득한 거리 인사동, 호수를 향해 떨어지는 짜릿한 번지점프를 즐기는 분당 율동공원, 들여다볼수록 재밌고 근사한 남산 한옥마을 등. 무심코 지나치던 가까운 거리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나싶을 정도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곳들이다.
조씨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나른한 일상을 잘 닦아 놓은 양은냄비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꼭 아름다운 외출복과 두둑한 지갑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외려 그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면서 집안에 갇힌 여자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여자 혼자서도 낯선 곳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여행지의 기본정보와 대중교통 안내, 심지어는 카페나 식당의 음식값까지 상세하게 기록해 여행지침서의 기능도 훌륭하게 해내는 책이다.
한정림 기자ubi@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