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길

[스크랩] 베이다, 물들다

물에 불린 바나나 2011. 11. 10. 23:25

살아야하기에

양식을 먹는다.

걸어가면서.

천국에서 산 깁밥이다.

은박지 호일을 벗겨가며

허겁지겁 먹고 걸어간다.

급한 마음에

그것도 대충 입으로 은박지를 벗기고

김밥을 먹는데 김밥에 빨간 피가 묻어있다.

입술이 베였다.

얇고 날카로운 은박지에

그냥 건조한 입술이 조금 베였다.

살아가는 것

그렇게

베이면서 사는것 같다. 

 

먼지묻은 서럽속의 기억들.

짐을 정리하다가

옛 추억속의 사진사이로 숨겨진

두껑이 없어진 붉은 빛이 안보이는

좀 퍽퍽한 작은 통안의 개펄에 새끼 손가락이

푹 빠졌다.

손에서 피가 났다.

아니, 그것은 인주였다.

점점 쓸모가 없어지는 인주.

날 기억해달라며

그녀는 나의 작은 손가락에 흔적을 남겼다.

내 새끼 손가락의 손톱은 그렇게

약간 어색하고 뭉클하게 발그래한 물이 들었다.

 

나는

어제

그렇게 베이다.

나는

엊그제

그렇게 물들다.

붉게...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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