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일기

[스크랩] 여름을 기억하며(4) 엄마, 아들 참외배꼽과 강가를 걷다...

물에 불린 바나나 2011. 10. 23. 16:35
남동생과 제수씨가 출근하고 나서 좀 늦게 형수님도 출근하고 나서
어머니와 난 산보를 하기위해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버드나무가 많다고 지어진 옆동네 유천동에는
유등천이라는 폭 60여미터의 하천이 르르고 있습니다.
간밤의 비와 요즘의 많은 비로 유량이 참
많더군요. 거기 유등천 강가를 걸어보기로 했답니다.

풀밭이 조성되어 있고 운동시설도 있지만 관리는 잘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의 고수부지. 거기를 찬찬히 걸었습니다.
강물이 맑아질려면 비가 오고 좀 며칠이 지나고입니다.
강물이 흙빛이었지만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우리네 어머님들이 그렇지만
골다공증이라고 연골이 약하고 그런 부분에 액이 빠져나가 우리의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어머님들은 자꾸 통증을 호소하곤 하죠.
오늘 보니 어머니 왼쪽 무릎이 좀 많이 뒤틀린 것 같아서 안따까웠워요.
객지생활하면서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처음엔 제 버릇처럼 제가 앞서 걸어가기도 했지만 천천히
어머니와 함께 강가를 걸었습니다.

그 유등천은 제가 어렸을적 자전거를 타고와서 많이 놀던 곳입니다.
제가 다니던 대신 고등학교도 강건너 산 앞편에 자리잡고 있는데
호남선 철로위를 300개가 넘는 육교를 통해서 연결되는 곳입니다.
고등학교 3년을 매일 왕복 두세시간씩 걸어다닌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도록 하죠. 그때도 공부가 안되면 공동묘지를 넘어와
여기 물가를 찾아 낚시하는 사람을 바라보거나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다니는 섬유봉제 공장의 모습을 보기도 하였죠.

한번은 자전거 뒷편에 냄비며 활채라고 고기잡는 채를 가지고 라면 넣고
스레빠 끌고 갔었죠. 견지낚시대로 고기도 잡구요. 그때가 초등학교5년
때인가 동생과 친구들은 버스를 타고 거기에 도착했구요...
나뭇가지 주워 라면 끌여먹고 고기 잡다가
지겨우면 물놀이도 하고 그랬죠. 물살에 그냥떠내려가기도하고
신발로 배처럼 떠내려보내고 달려가 잡기도하고요.
근데 저위에서 사람드리 모여있는 것이었어요.
달려가보니 어느 여자애가
얼굴이 파래져서 누워있는 것이었어요. 수군대는 사람들, 그리고
저 멀리서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분이 울면서 신발도 신지 않고
허겁지겁 달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어떻게 해보지... 인공호흡이라도 해주면 싶었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미 소녀는 미동도 하지않았습니다...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참 잘했던 기억이 납니다.
며칠간요.

이제 그곳은 준설이 되어서 일정한 폭으로 흘러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못하는게 없습니다. 물길도 마음대로 틀어버립니다.
그 위로도 아파트 금성백조건설의 아파트공사현장이 있고 강가를
관통하는 길도 크게 나있었습니다. 몇해전만해도 없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우리가 추억했던 공간은 시멘트로 채워집니다.
쇳덩어리를 짊어진 네발로...
저 위쪽으로 올라가니 다리 아래에는 역시 노인분들이 앉아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구요. 또 회사분들인가 닭을 삶아
드시고 계시더라구요.

철교 다리 아래 만큼 확실히 더위를 피하게 해주는 곳은 없죠.
다리에서 주워 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다리로 잘가는 것 같아요.
강가를 걸면 한강에서도 그렇지만 100미터 마다 표시가 있어요.
한 일키로정도 올라가니 그 위는 건기 위해 포장한 폭 일미터 50의
길마져 물살에 점령되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더 올라가지 못했어요.
그 위에서 전 제방옆 둑방으로 수영도 하고 채를 가지고 가서
수풀속에서 민물 새우를 잡던 생각이 나네요.

초틍학교 2년때인가, 개업때 탈랜트 현석과 고두심이 나와 팬
인사를 했던 서대전 앞4거리 무궁화백화점 버스 정류장에서
채를 머리에 쓰고 비를 피하며 여기 강가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요새로 말하면 '얼짱'정도되는
같은 반 여자애와 얼굴이 마주친 것이예요. 으미 창피.. ㅎㅎ
하여간 그때 비오는 날 잡은 새우에 정구지(부추)넣고 어머니가
끓여준 새우찌게 맛이 기똥차게 시원했었죠... 쩝... 먹고싶다~

아침 식사후에 어머니와 난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며
오랜만에 들추어본 가족사진들을 집안 막내인 제수씨와
보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하였습니다.
제 돌사진도 보구요. 우리 형제들 아직 막내가 태어나기전 3남매가
리어카위의 유원지 배에 앉아서 찍었던 사진이나 동생의 유치원
선생님과 동생 그리고 어머니가 소풍가서 찍은 사진도 보았지요.
그 선생님들도 이제 중년이 다됐겠지요?
우리는 새로운 살림방을 구하는 동생이야기도
하면서 강 하류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내려 걸어갔습니다.

어렸을때 우리는 강을 연결하는 다리를 '동굴'로 비유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강가위의 기차길 철교를요... 사람들이
드문드문 다니기도 하고 미친 처녀, 혹은 총각이
사랑에 실패하고 부모님의 반대에 저항하여 열차에 뛰어들었다거나
강물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를 소문처럼 듣고 놀라곤 하곤 했었죠.
그리고 잘 노는 애들은 거기서 여자애들과 떡(담배)을 먹거나
술을 먹기도 하고 밤에는 이상한 짓을 한다고 듣고 했지요.

12동굴을 지나 어머니와 전 좀 시내쪽으로 하류로 내려갔어요.
그리고 거기서 낚시하는 사람도보았어요. 피라미 몇마리가 잡히는
것을 앉아서 보고 재밌어 하기도 하였죠.
은빛 피라미들이 찰랑찰랑이며 올라오는 모습이 마치 발레리나
걸들이 공연하듯이 유연하였으며 기계체조를 하는 모습같았어요.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달마시안 12개월짜리 "야"-아직이름을
안져서 야라고 부른다고하더군요-가 조심스럽게 주인을
따라 산책을 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였구요.

우리는 그늘에서 강물을 보고앉아 가만히 강물을 바라보기도 하였어요.
"어여 너도 짝이 나타났으면..." 전 가만히 웃어보입니다.
"올라가기 전에 할머니 한테 한번 가야죠. 소주 요플레, 담배 사서요."
어머니가 먼저 신발을 벗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 양말은 죽창이 났습니다. "죽창이 머죠?" "이거 봐"
구멍이 크게 난것입니다. 살색 스타킹이요... 죽창나게 얻어터졌다는
말도 들어본것 같습니더, 그러고보니.
저도 신발, 샌들을 벋었습니다. 풀밭을 걷기도 하였는데
어제온 비때문에 촉촉히 젖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끼니나 제대로챙기고 있는지 걱정하지만
난 어머니가 더 많이 오래 이렇게 그나마 건강하였으면 합니다.
그리고 몇년 만에 억지로 하루 세끼 병원밥을 먹어서 원기충만입니다.

강변 사람전용도로에는 사람전용이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힌패인트로 어른과 아이가 그려져 있는데 아이는 혹
거북이나 이티같아보입니다. 횡당보도의 등에도 사람표시가
있잖아요. 그거 자세히 보묜 아주 기괴합니다. ㅋㅋ
"빠다다당" 오토바이를 탄 젊은 이가 "ATHLETIC"이 쓰여진 티를 입고
휑 지나가고 스쿠터에 부인과 아이를 테우고 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우리는 그럼 잔디로 비켜서줍니다.

변동노인정이란 동양최대(?)의 장판이 깔린 다리아래 정자에는
어림잡아 200-300여명의 어르신들이 바둑, 점100 화투, 소주 등을
마시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규모에 어머니와 전 "우와~"
그리고주차장 옆 포장마차는 거의 다 망했지만 한 포장마차에는
눈가에 검은 주름인지멍인지 들은 고혹한 여인이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쭈구미를 데친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계시네요.
날리면서 한가닥 할때가 있었겠죠. 그 분도...
제가 거기 걸어다닐때는 다라아레서 사시는 분도 많았어요. 그 물에
빨래도 하고.... 이제 다리아래로 젊은사람들은 잘 가지 않을거
같아요. 놀이공원도 많으니까요. 그래도 다리아래는 휴식처입니다.

물이 고였습니다.
어머니가 신발을 들고 건너지 못합니다. 재빨리 등을 갔다 댑니다.
어머니를 없습니다. "어.... 이거 이렇게 아들 등에 업혀보네,,ㅎㅎ"
어머니를 이렇게 업어줄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합니다.
"무겁지?" "아뇨..." "얼른가자, 배고프지..." "네"
이렇게 오늘 어머니와 강가를 걸었습니다.
중구 산성동 원당디7길에서 유등천, 서구 내동, 갈마동,
다시 유등천, 원당디7길로.... 몸도 마음도 한결 가뿐해집니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P.S 집에왔는데 열쇠를 안가져와 집에 못들어가고 맥섬석 원적외선
체험관 놀러가신 아버님을 기다리며 또 한시간 넘게 집근처 문성초등학교
운동장 약수터, 집근처를 헤멨답니다. 에구에구 ㅎㅎ 미챠~~ ㅋㅋ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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