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협의회

한국영화아카데미 2003 졸업영화제 총평

물에 불린 바나나 2011. 7. 30. 23:04

참외배꼽 조회 12 |추천 0 | 2003.03.01. 04:52 http://cafe.daum.net/moviepost/Jwu/1160



-프롤로그-
"아야 타핫..... 이얍...!!! 헙 타앗.. 타타타 핫둘 으쌰라아..."
뒷편 동성중고체육관에서 태권도 하는 운동선수들이 내는 소리가 "나다" 뒤편으로 돌아가보니 들렸다. 매트를 구리고 샌드백을 치는 소리 기합소리, 타격소리. 강습!


1. 누가 보러 오는가?
우리는 독립영화를 어디서나 자유롭게 볼수 있지만 흔히 볼수 없기도 하다. 그 것(?)들을 보려고 찾아보면 돈 안내고 볼수 있기는 하나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면 어렵지 않게(!) 찾아가서 볼 수 있기도 하다. 흔히 독립단편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은 이런 영화제를 통해서 또는 발표회를 통해서 그리고 공중파나 케이블 텔레비전-심지어 유선으로 재방송되는 여관방에서 보기도 했다, 드물지만-에서 볼수 있거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볼수 있기도 하다. 그럼 누가 이런 영화를 보러 오는가? 돈을 내고 보던 관객들은 잘 오지 않는다.
그들이 이런 류의 영화를 잘 찾지 않는 것은 일상적인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시간을 내어 보기 어려울뿐더러 -상영횟수와 시간의 제한- 특히 일반 자유인들처럼 색다른 재미와 창작욕의 간접체험을 위한 영화 주변(언저리)인이 돈을 내지 않아서 좋고 그냥 호기심에 찾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은 한편으론 돈을 내지 앉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보러 오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도 있다. 바쁘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장편 상업영화 즉 반 독립영화사람들도 그들중의 하나이다.
물론 영화를 즐기는 여유객(客)들이 함께 공유하는 대상(여자 혹은 남자친구 혹은 동성친구)과 기실 떠들고 몰입하고 소화하기엔 버거운 내용과 주제와 형식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이 요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그 요금 가치의 지불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 여가의 활용에 대한 대가에 대한 만족, 충만감에 대하여 만든 이들이 보는 이들에게 지급유예를 한 것은 아닐까? 그 재미(가치를 모르는 이들의 판단 근거)는 효용가치에 대한 지불을 유예한 대상이나 대한 타협적인 제스처일까? 단편은 사고의 창을 넓혀준다. 단단편을 보고 먼길을 가는 방법을 생각할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여유있는 사람들이 기꺼이 일상과 고민과 사고의무대로 와야하는데... 특히 장편을 하고 만드는 사람들도 보아야 하고.

2. 타자(者)로부터 자유롭지 않는 단편들
단편 영화의 관객들은 반은 작품과 관계된 관계자들이다. 아니 반이상일지도 모른다. 처음 상영된다면 첫 공개라면 그 수치는 더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관계자들이라 함은 스텝과 배우들 만든이들과 직간접으로 연관을 맺은 사람들이거나 멀리 벗어나봤자 그 친구들 내지는 지인들이다. 그럼으로 단편은 첫 상영 이후의 그 작품성 또는 만족도에 대한 평가에서 애초에 완전한 이방인들에게 보여지고 이해되고 평가받기를 거세당한 운명(?)인채 상영되어지고야 마는 운명인 것이다.
관객이나 연출가와 촬영가 그리고 스텝들은 그래서 일차적으로 스텝들과 지인들(다른 단편 작업을 하는(혹은 준비하는) 사람들로부터 판단되어 지고 평가 받는다. 여기서 배우는 약간의 진퇴양난에 빠진다. 그리고 애매모호하게 반응한다. 작품의 완성도가 낮다면 시나리오 분석이나 연기나 미흡한걸로 판명되고 완성도가 높다면 스텝들한테 공을 돌리나 완성도가 높아도 자신의 공이라 말할수 없다. 그러므로 배우들의 평가는 정체되고 유보된다.
일단계 필터를 거치는 지점에서 반응은 엇갈릴수도 있고 이해를 받으며 동정(헉!)을 받고 격려를 받는다. 일반 상업영화와 비교자체가 무리이고 그 평가자체도 상반될 수 있지만 상업영화가 "1.재밌다 2.재미없다" 라고 단 두가지로 뚝 잘라서 판단되어질 때 독립영화들은 "1.재미있고 기발하다 2.재미없고 어렵다 3.어렵고 힘들다" 즉 다시 말해 "음 좋은데, 고것 참, 어쭈, 어려워, 머가 먼지.., 끄응" 이라는 형형색색의 다양한 반응을 토해낸다. 그리고 긴것과 달리 많은 짧은 영화들은 이야기되는 부분이 "나라면...." 혹은 그건 아니야..." 등등 좀 더 구체적인 반응과 지적이 나올수 있다는 구체적인 지적이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타자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영화들의 탄생은 역시 他자로부터 보호받고 내부로부터 옹호받는다. 하지만 역시 비밀스럽게 혹은 공개적으로 하필 그들에 의해 외면당하고 정조준되는 비운을 맞이하는 표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떠랴 他者는, 존재는 숙명이다. 영화가 있는 한 계속 될 것이다. 타자는 또다른 牙子인 것을. 그래서 자.유.롭.다.

3. 연출의도는 과연 작품후기와 다른가?
전체섹션을 보고(나)서 연출의도를 보았다. 미리 선입견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다. 연출의도를 읽고 나서 영화를 다시 되짚어 본다. 그리고 아 그랬구나.. 하고 느끼기도 한다. 반대로 "그래도 모르겠어"나 "하고싶었으나 용서해달라"라는 창조적 판단까지 유추하는 연출의도가 적혀 있어 아니 즐거울수가 없다.
단 몇줄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인쇄하기가 쉬울까? 아니면 스크린에 맺히는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이어려울까? 그래서 연출의도는 연출후기, 작업후기의 성격을 띄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연출의도를 보고 영화를 본다고 겁먹을 필요는 나무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대체하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처음 생각한 연출의도가 그대로 존재한 경우는 이번 작품전에서 얼마나 될까? 최종 프린트가 나오고 팜플렛에 박힐 자료를 인쇄하기에 수정(수도 없이 정정)한 연출의도가 올바른 것일까? 처음의 연출의도 그대로 변한게 없이 적힌 영화를 찾아서 보고 싶었다. 물론 보고 나서 들추어 보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작품 감상후 연출의도를 보고 다시 그려보고 그 질(質)을 가늠해본다. 그 의도는 수정된 것인가? 그리고 과정은 제작과정은 효과적인가? 촬영은 대안적인가? 아니면 자의적 해석인가? 보는이들을 고려한 것인가 등등이 이번 영화제의 작품을 나름대로 평가하는 기준의 하나였던 것 같다.
단편의 하나의 흐름인 일상에 대한 묘사와 관찰에서 벗어난 신선한 충격적인 작품들이 더 많았으면 한다. 장르가 더 다양했으면 하는 바람도 욕심일까? 하지만 이미 교육생은 피곤하고 지치게 마련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프로덕션 과정을 총괄할 전문성을 갖춘 프로듀서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부족하여 프리작업이나 후반작업에 힘이 딸려서는
완성도는 요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만들고 찾아낼것인가? 숙제일 것이다. 연출 촬영 프러듀서 이 세가지 부분의 협력시스템의 새로운 안착 없이는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상영작품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토론 하는 시간도 가졌으면 한다. 자체평가와 더불어 개관적인 평가를 통해 얻어가고 반성하는 시간이 있다면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그런 바람을 가져본다.

-프롤로그-
정조준 하라! 노리쇠 후퇴 탄알 일발장전. 준비된 사수로부터 엎드려 쏴!
"아야 타핫... 이얍...!!! 헙 타앗.. 타타타 핫둘 으쌰라아... 꺄오 팍퍽퍽퍽(매트위에서 구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