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떼끄컬트

Trois Couleurs 세 가지색 이야기 -김정아-

물에 불린 바나나 2009. 3. 5. 16:13

 

Blanc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

<죽은 시인의 사회>

 

 

■ 아주 오랫동안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 난 그를 쬐깐할 때부터 사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한창 사랑이 무얼까 궁금해하던 그 나이에 그를 만났다. 그는 6학년이었다. (여기까지 읽고 웃으시는 분! 미워잉. 진짜 사랑했단 말이예요.) 결국 짝사랑으로 끝난 내 첫사랑.... 나는 그에게 내 모든 정성을 다하였다. 명절마다 챙기고 생일도 챙기고 발렌타인데이... 물론 빠질 수 없지. 시간도 바치고, 열정도 바치고, 눈물도 편지도 바쳤다. 10여년간...

대학 2학년 때, 난 그를 포기했다. 나쁜 자식! 눈 삔 놈! 고등학교 3학년에 접어들 무렵, 난데없이 그가 전화를 했다. 그는 자신의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나를 만나고 싶다고...(으아 떨려라.) 정신없이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그는 내게 고맙다고...(챙겨줘서) 또 미안하다고...(지는 못챙겨줬으니까) 이제부터라도 잘 해 주겠다고...하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부탁하라고 했다.

그 다음 주말, 난 용기를 내어 그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영화보고 싶어. 죽은 시인의 사회.”

진짜, 정말 보고 싶은 영화였다. 오빠는 말했다. 딱 두 마디였다.

“나, 바빠! 미안!”

그리고 그 후 다시는 연락이 없었다. 우리 사이에 뭔가 변화가 생기리라고 기대했던 난 바보가 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쯤 후에야 난 비디오로 나온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았다. 엄청나게 울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영화가 워낙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그의 차가운 말투가 떠올라서...이렇게 좋은 영화를 함께 보지 못하는 현실이 서러워서...

 

 

 

 

Blue

징글징글 <패왕별희>

 

 

● 대학 1학년... 난 너무 순진하고, 음.. 또.. 이쁘고, 음.. 또.. 바보같았다.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그의 별명은 조까치(?)였다. -성이 조씨인데 까치같이 생겨서-이 방학 때 갑자기 전화를 하셨다.

“정아니? 나다.”

선생님은 아끼던 제자인 나의 대학생이 된 모습도 볼 겸 ‘커피라도 한 잔..’을 청하셨다. 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를 만났다. 그는 차를 대전으로 몰았다. (난 김천 사람이다. 알 사람은 알지만) ‘차마시러 이렇게 멀리 가나’하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커피나 한 잔..’에서 ‘영화라도 한 편..’으로 메뉴를 바꾸셨다.

그땐 대전 지리도 모르는 나, 무슨 극장인지 간판도 생각 안난다. 영화는 그 유명한 <패왕별희>였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난 공짜로 영화구경한다 싶어 신이 났다. 룰루 랄라였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후 낌새가 이상했다. 선생님이 내게로 손을 뻗어왔다. 내 손을 잡더니 자기 쪽으로 끌어갔다. 그리고 슬슬 쓰다듬는게 아닌가? 소름이 쫙 끼쳤다. 사람도 많은데 벌떡 일어나 달아나자니 창피하기도 하려니와 다른 사람도 아닌 선생님이라 당황스럽기도 해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손을 빼서 팔짱을 낀 상태로 건성 건성 영화를 봤다. 굉장히 기대하던 영화였는데 무슨 내용인지 그때는 아무 정신이 없었다. 영화가 끝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선생님은 팔짱까지 낀 내 손을 어떻게든 빼서 자기 쪽으로 끌어가려 하셨다. 식은땀이 흘렀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난 얼른 일어나 극장을 나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 도망을 쳤다. 무조건 대전역을 찾아 걸어갔다. 선생님이 역까지 쫓아오셨다. 난 거의 울먹이면서 매표원에게 김천가는 차표를 부탁했다. 마침 바로 출발하는 하행 열차가 있어 올라탈 수 있었다. 다행!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 장국영의 가늘고 톤이 높은 목소리가 섬찟하게 들릴 정도였으니...

뒤에 비디오로 본 <패왕별희>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그 영화에 이런 징글 징글한 추억이 들러붙었으니 난 참 운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이쁜게(?) 죄다. 죄!

 

ROUGE

멜라니가 되야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우리 부모님은 겨울에 결혼을 하셨다. 이듬해 겨울 어여쁜 첫째 딸을 낳으셨다. 두 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 딸은 태어날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고 한다. 태어날 당시 남들이 다 우는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던 것이다. 알고보니 배에 물이 꽉 차서 울 수가 없었다나? 거꾸로 들고 등을 탁 탁 때리자 간신히 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바로 나다.

결혼 기념일을 잊고 챙기시지 않는 쪽은 늘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셨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날....아버지는 아침부터 어머니를 조르고 조르셨다. 영화보러 가자고, 결혼 기념일인데....그러나 어머니는 날도 추운데 어딜 가냐며 소리만 지르시는게 아닌가?

포기를 모르시는 우리 아버지는 거의 반나절 이상을 조르고 또 졸랐다. 지치신 어머니는 나를 아버지 앞에 세우시곤 “얘 데리고 갔다 와요!”라고 소리치셨다. 순간 아버지 얼굴에 스치는 아쉬움....실망감.... 그러나 아버지는 곧 나와 영화를 보는 일도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셨는지 표정을 밝게 바꾸시고 그러마고 하셨다. 마침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극장에서는 특별히 대작을 상영하고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난 그 전에 소설로 읽어본 적이 있었지만 워낙 훌륭한 영화라는 말을 듣고 있던 터라 몹시 보고파했었다.

아버지와 나는 나란히 앉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봤다. 꽤나 긴 영화였지만 전혀 길다는 생각을 못하고 보았다. 우리는 서로 말도 걸지 않았다. 정말 좋았다. 영화도 좋았고 내 옆에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도 좋았다. 영화가 끝나고 아빠와 나는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 만두집에 들렀다. 만두를 시켜 먹으며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아빠는 스칼렛이 좋아 아니면 멜라니가 좋아?”

“글세....난 멜라니가 더 좋은걸!”

“응. 그래?”

만두를 다 먹고 나오려는데 아버지는 만두 3인분을 포장해달라고 하셨다. 집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생각하신 것이다. 나는 그 때 우리 아버지가 굉장히 멋있는 분이라고 느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때에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멋있고 아름다워서 나중에 나도 크면 우리 아버지같은 남자를 만나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눈에 내렸다. 나는 아버지의 팔짱을 꼭 꼈다. 아버지는 오른손에 만두가 든 까만 비닐 봉지를 드시고 왼손으로는 내 손을 잡아 아버지 점퍼 주머니 속에 넣으셨다. 아버지한테 매달려 걷는 기분이 썩 괜찮았다. 아버지의 걸음을 따라 걷느라 총총 거리면서 난 멜라니같은 여자가 되어야지라고 결심했었다. 비록 지금 내 모습은 그 결심을 비웃고 있지만.... 아버지와 눈길을 걸어오면서 나는 마치 멜라니가 되어 애슐리의 손을 잡고 걷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