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일기

[스크랩] 청량리에서 종로 3가까지

물에 불린 바나나 2009. 2. 8. 17:35

청량이역에서

다들 돌아가고 나서

어디를 갈까 망설였다.

뒷풀이가 따로 없어서 이른 시간이었다.

청량리역 광장이 이리 작은가?

도봉산에 살을때도 아니 서울에 올라와서 부터

청량리 역은 나에게 꽤 기억이 남는 곳이었다.

그 기억은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어쨌든 부담없이

어디든 다시 걷고 싶어서 발길을 옮겼다.

사실 약속을 하고 누구와 함께 목적지를 잡고  걷는 것도

재밌는 일이지만

이렇게 혼자 주어진 시간을

목적지도 불분명하게

마냥 걸어가는 것도 참 재밌는 일이다.

버스 환승정거장을 건너 시장으로 들어섰다.

노점에 펼쳐진 과일가게며 연찬 화로에 하얀 가래떡을 굽는

우리네 각기 평범한 아들,딸들의 소중한 어머니들.

녹차호떡 하나를 사서 맛나게 먹으로 나의

혼자 걷기는 시작되었다.

 

삼겹살 갈비집이 널린 시장을 쭉 걸어나갔다.

가족단위 손님들도 있었지만 철시한 은행 365코네에 있던

주름살이 보이지만 화장한 여인이 역시 검은 잠바와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반갑게 달려가 손을 잡은 중년 남자의

반가운 어떤 재회도 있는 곳이 바로 시장 골목이었다.

과일 도매상이 있는 곳에는 마지막 떨이 과일을 파는

흥정의 목소리가 활기차다.

 

나는 30년을 용두동에 살았다. 한 장소, 한집에서

그 대전의 용두동이 같은 동이름이 서울에도 있다는 사실은 

고등학교 때인가 알았다.

서울의 용두동 사거리를 지났다. 샷터가 내려진 빌딩 사무실

그리고 환한 인테리어의 새 가게지만 손님이 없어서 우울해 보이는

주인 아저씨를 못본채 하고 걸어나갔다.

머리속의 고민이나 걱정이 이제는 좀 다른 한켠으로 밀어나간 기분이다.

그래서 자동차 매연이나 소음 정도는 그냥 참을만 하다.

 

제기동역을 지나

수도학원을 바라본다. 학원!

나도 재수를 했으면 어땠을까? 한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냥 순순히 살아왔던 날들에 대한 반성.

아니면 용기없어 대면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나의여린 마음들...

 

청계9가 쪽을 갈려다가 그냥 걸음을 직선으로 쭉 뽑았다.

차들이 얼마 안보이는 한가한 대로변에 손님 몇명만을

싣고 천천히 가는 실내등이 다 켜진 환한 파란색 버스를 보면 기분이 좋다.

여유러움. 그것이다.

운전학원에서 버스의 처음 시동을 걸었을때의 설래임. 그 커다란

버스가 움직일때의 기분도 기억이 난다.  

 

동묘, 사대주의로 기억되는 곳.

가로에 널려진 잡동사니들을 한 번 쭉 훓어본다.

방독면에 카메라에 무슨 홍보용 시디, 구형 그러나 한때는 신형이었던 핸드폰들...

언젠가 빛바랜 트럼펫을 불지도 못하면서 사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소유 만으로 기분을 느낄수 있을것 같아서 그런 생각도 했었다.

머리에 묶는 고무끈 몇개를 백원에 팔고는 아저씨는 삼륜 오토바이에 짐을 싼다.

 

동묘 사거리 양평해장국집의 소모리국밥은 고기양도 많고 국물맛이 좋다.

언제 거기 한번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있다면 그리고 좀 사과할 일이 있는

미안한 친구가 있다면 데려가고 싶다. 미끄러질만큼 높게 떠서 아이스크림도 건네고

가게 문을 열고 나오리라. 물론 소주 몇 잔 나누어서 얼굴이 붉어진채로...

 

동대문.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재작년 초여름이지 아마...

방송은 되지 않았지만 KBS 모 피디랑 특집 걷기 프로그램에 나갈 프로그램

찍는다고 몇시간을 걷기에 대한 철학이니 뭐니 그딴 이야기 한적이 있었다.

낙산을 올라가며 걷는 모습도 찍고 인터뷰도 하고.

방송이 되지 않았지만 정말 진심이었다.

그때 왜 그리 술술 생각들이 잘 나왔는지...

 

종로통, 종묘공원.

일단의 아주머니들이 어슬렁 돌아다니고

늘어진 스피커 소리와 유행가 가락이

공원에 울려퍼진다.

과연 세계문화유산답다.

 

종로3가 단성사에서

나의 정모후에 솔로 걷기는 막을 내렸다.

두시간 정도를 그러니까 밤에 혼자 걸은 셈이다. 

 

060115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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