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협의회

[스크랩] 부산, 부산국제영화제의 기억(記憶)들...

물에 불린 바나나 2010. 7. 14. 14:31

벌써 11회째인 부산 국제 영화제가 어제 개막을 했단다.

시간이 뻘써 그렇게 흘렀구나...

지금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이면서

한창 성장하는 중요한 영화제로서 위상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영화제의 계절 10월이 오니 예전 생각이 나서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1회 영화제가 닻을 올린것은 1996년 

내가 본격적으로 영화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한게 1993년 이었다.

영화모임은 영화잡지 월간 스크린을 통해 회원을 모집하고 회원 서로간에

편지를 통해서 그리고 매월 내가 만든 회지를 통해서 영화와 삶에 대한 우정을 나눴었다. 

 

1996년은 내가 만든 영화동호회 관객집단 "영화세상"의 3주년이었다.

마침 난 더 영화에 빠져들었다. 소극적인 동호인 모임에서 벗어나

영상문화운동인 씨네마떼끄 운동을 지역에서 막 시작하려는 단계였다.

영화감상회도 개최하고 전국 각지의 영화동호회와도 교류를 시작하였다.

어렵게 사무실도 구하고 자주 만나 이야기나누고 영화공부도 하고 그랬던 시절이었다.

95년인가가 영화탄생 100주년이라고 해서 텔레비젼에서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그랬다. MBC '출발! 비디오여행'도 당시 시작한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EBS에서는 아주 잘 단든 다큐멘터리 '세계의 영화100년'인가도

방송되고 했었다. 아, 그리고 '시네마 천국'도 아주 좋은 공부가 되는 프로였구나.

 

여하튼 1회 부산 국제영화제는 칸느, 베니스, 베를린 등 잡지를 통해서 밖에 접할수 없었던

멋진 국제영화제를 우리가 집접 경험할 수 있을거란 기대를 갖게 해주었다. 이름만 들었던

영화도 볼 수 있었고 멋진 스타와 배우보다 더 동경했던 감독들도 볼수 있을거란 생각에

흥분해하며 부산영화제를 기다렸다. 그리고 거기 부산에 갔다.

지금이야 인터넷이란 양방향 미디어와 다기능 멀티 미디어 핸드폰, 노트북, 디카 등이

널려있으니 지천으로 널린게 정보요 자료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게 아직은 초기단계였다.

너무 발달돼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반대로 잃어버린 것이 있지 않겠는가.

지금 20대 아이들은 그런 걸 경험하지 못해서 모를 것이다. 

 

내가 만든 영화세상이란 모임은 이상하게도 부산에 회원이 많았다.

그래서 부산을 종종 다녀봐서 그런지

부산은 아직도 나에겐 친근한 느낌이 많은 좋은 추억들이 많은 도시이다.

생각해보면 부산이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에 뚬을 가진

우리들에겐 유토피아로 다가왔다. 미래의 감독들, 제작자들, 운동가들에겐 말이다...

 

여하튼 지역 대표로 참가하면서 게스트 I.D 카드도 발급받아 좀 으쓱하면서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었고 돌아가면 나눠줄

각종 자료들도 챙기면서 부산 남포동 일대를 휘젓고 다니었던 추억이 새롭다.

그러나 늘 호주머니는 궁해서 부산 온천동이나 부대앞에 있었던 시네마떼끄의 작고 허름한 사무실

에서 그곳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신문을 깔고 자고 일어나 아침에 화장실서 세면을 하고

영화를 보러 나갔다가 저녁이면 다시 들어와 소주를 나눠마시며 영화이야기에 밤새워가며

이야기꽃을 피우며 놀기도 했었다. 찜질방도 없던때였다. 그래도 행복하고 즐거웠었다.

특히 부대앞의 금정골 돼지국밥집은

언제나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곳이어서 늘 부산하면 거기부터 생각나곤 했다.

 

그렇게 한 번 내려가면 4~5일을 머물다 온게 1회부터 3,4년간은 지속이 되었다.

또 한번은 마지막 돈까지 다 써서 고속버스표 값이 모자라서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일반표를 사자니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우등펴를 사자니 돈이 모라자

매표 창구의 아가씨에게 돈 5천원을 꾸었다. 착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마음씨 좋은 그 아가씨의

이름은 이은숙 인가로 기억이 되는데 계좌번호와 이름을 적은 메모지를 이후 몇 년간

다이어리에 끼고 있었는데 미안하게도 아직 송금을 못해 갚지 못했는데 미안할 따름이다.

그 분도 지금 10월이 오면 그 말랑말랑 당찼던 대전 촌놈의 감언이설을 기억하고 있을까?

 

20세기가 끝나가면서 부산으로 가는 발걸음은 차차 멀어졌다.

살기가 더 각박해졌다. 난 이리저리 어렵게 연명하던 사무실도 정리했고

극단에 들어가 신인 연극배우란 타이틀로 살아가고 있었고 영화를 만들지 못해

자괴감만 쌓이고 있던 시기였던 어찌보면 암울했던 시기였었다.

그 당시는 영화제가 곧 생겼던 부천 환타스틱 영화제도 마찬가지의 생활이 이어졌었다.

 

절치부심하여 돈을 좀 모으고 준비하여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와서 단편 영화를 만들시절인 2000년대 초반엔

실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보는 것이 중요할까라고 애써 자위하며

라면으로 끼니를 떼울망정 제작회의에는 꼬박 출근하고 토론하고 회의하던 때도

모두가 열광하였던 월드컵 전후, 바로 엊그제이다.

 

얼마전 늦은 밤 KBS 독립영화관에 함께 만든 단편영화가 방송되며  

단역으로 나온 나의 모습을 보면서 '연기도 좋을 것 같아...'라는 생각도 들고

지금도 이렇게 끄적대면서 공상을 하는 것을 보면

영화에 대한 나의 꿈-현재형으로는 계획-은 내가

눈감기 전에는 버리지 못할 손놓지 못 할 그 무엇이 아닐까 하는 애증(愛憎)이란

단어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물론 그 실체가 모호한 영화뿐만 아니라 거기 부산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도 있었다.

그 여인은 무얼하고 있을까? 지금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며 

내가 바보같은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후회와 미련이 몰려오기도 한다. 

의기투합하여 평생을 같이 할 것 같았던 영화동지도 만나서 '형 동생'하며 독한 소주잔을

비웠건만 서로에게 상처가 아니었는지 그냥 철없던 30살 이전의 그 혈기왕성했던

모습이 그냥 떠올라 부끄럽기도 하다.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직까지 철이 들지 않아 이렇게 사람들 실망시키고

속 썩인게 미안하여 반성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10월 부산, 부산 국제영화제를 생각하면 내 피속에 적혈구와 백혈구가

거꾸로 돌아 또 다시 장난 같지만, 바보같지만

더 뜨거운 사랑과

영화와의 만남을 그리워하고 한다.

 

그리워하는 것

꿈꾸는 것은 죄가 아니겠지....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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