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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전상서 -제1회 충무공이순신호국문학상 수필 본상(황규석 작가)

물에 불린 바나나 2022. 6. 26. 22:20

제1회 충무공이순신호국문학상 수필(탐방기) - 본상 황규석-

부모님 전상서


부모님, 나의 사랑하는 부모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저도 잘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저는 현충원에 소풍을 나왔습니다.
유월의 하늘은 역시 푸르고 맑게 빛나고 있습니다.
봄이 금방 지나가고 더운 느낌마저 드네요. 연둣빛 나뭇잎과 하늘거리는
수양버드나무를 보니 눈도 시원하고 보기가 참 좋아요.
그런데 우리 아버님은 곧 시작되는 모내기 준비에 여념이 없으시겠죠?
새벽부터 누렁이 쇠죽을 끓이고 쟁기를 챙기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는 아래동내 품앗이에 나가셨나 봅니다. 큰 아들인 저를 위해 닭도 키우고
품 삵을 받는 일을 참 많이 다니셔서 검게 탄 얼굴과 주름이 기억납니다.

우리 일곱 식구 건사하시느라 고생만 하시고 효도도 못하고
먼저 먼 길을 떠나게 되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저 같은 불효자도 없을 거 같아요.
없는 살림이지만 장남인 저를 서울의 고등학교에 진학을 시켰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터진 6.25 동란에 어머니 허락도 없이 자원입대하여 군대에 갔으니까요.
저는 앞뒤 안 가리고 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냥 내나라 우리 민족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벌어진 전쟁의 참상은 정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라보다 내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면
저도 학도병이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단언컨대 후회는 없습니다.
작은 힘이지만 나라를 구하기위한 제 행동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부모님께서도 너무 섭섭하고 슬프게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실 거라 확신합니다.
그렇죠? 어머니와 떨어져 있다 보니 또 오랫동안 어머니의 손을 잡지 못하니
다시  철없는 아이가 된 거 같아요.
어릴 적 엄마 젖을 빨려는 욕심에 다른 한 쪽 젖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셨잖아요. 그 얘기 전우들에게 해주니 웃고
난리가 났습니다. 욕심쟁이라고 또 그만큼 젖을 많이 먹었으니
꼭 전쟁에서 힘을 내서 승리해야 된다고요.

어머님께 제가 전선에서 편지 몇 통을 써서 보냈는데 받아보셨는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 막둥이 순이는 오줌 안 싸고 학교에 잘 다녔는지 궁금하네요.
오남매 모두 이 맏이의 조국사랑과 희생을 기억하리라 믿습니다.
아버지는 건강이 어떠신가요? 소아마비 장애로 태어났지만 저는
아버지가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어요.
늘 든든한 가장이신 아버지에게 시원한 막걸리 한 번 대접하고 예쁜 며느리도 맞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 예쁜 공주님을 안겨드렸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여기 현충원에는 오늘 휴일을 맞아 많은 학생들이 왔습니다.
오늘이 호국백일장과 그림그리기 대회 날이랍니다.
평소에 제가 글쓰기를 좋아해서 하늘에서 특별히 차표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래서 현충원에 저도 모처럼 외출을 나왔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저도 호국영령이라고 하니 좀 쑥스럽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그 아이의 부모님들도 오손도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열심히 글도 쓰고
물감을 풀어 색을 칠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마 제 모습은 볼 수가 없을 거예요.
저는 살아있는 몸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기웃거리고 하늘나라에서 싸준 김밥과 사이다
찐 계란도 먹으며 모처럼의 소풍을 즐기고 있답니다.
저와 같이 현충원에 외출을 나온 전우들도 고향이 전국 방방곡곡입니다.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그리고 충청도
사투리가 구수하게 들립니다. 재미있는 건 모두들 젊은 모습 그대로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일찍 전쟁 중에 세상을 떴지만 영원한 젊음을 선물 받았습니다.
3.1운동 순국선열 선배님들의 모습도 실제로 만나보고 인사도 드렸습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선배님들의 이야기도 듣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다시 한 번 불러보고 싶어요. 전사 소식을 듣고 놀라셨죠?
거기다가 제 주검을 거두지도 못해서 소리 죽여 우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걱정 마세요.
저는 조국 전방 고지에서 잘 쉬고 있습니다.
국군전사자 유해발굴단이 곧 저와 제 전우들을 찾아낼 거예요.
그러면 꽃단장하고 부모님께 인사드릴 거예요. 울지 마세요.
약속드립니다. 하나도 외롭지 않아요.
저기 우리나라의 미래인 꼬맹이들의 재잘거림을 들어봅니다.
그들이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고 있으니 고맙고 힘이 납니다.
우리 형제들도 다 자리를 잡고 가정도 꾸려서 잘 살고 있더군요.  
여기 하늘에서도 소식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동생들도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되었네요. 제가 누리지
못해도 나의 가족들, 이웃들 나라가 살아서 발전하였다면
그 이상 아쉬울 게 없습니다.
그 또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저와 우리 동료 전사자들의 보람이겠지요.
아버님, 어머니 곧 제가 발견되어 인사드리러 한 번 찾아뵐게요.
그때 못 다한 효도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편안히 계세요.
오늘 따라 짝사랑 숙이도 보고 싶네요. 숙이도 할머니가 다 되었겠네요.
이만하면 당신의 자랑스러운 아들 어디 내놔도 부족하지 않지요?
우리 부모님! 사랑합니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나라를 지킬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상 부모님 전상서를 마칩니다.

필승!
2021년 6월 25일

부모님, 당신의 자랑스러운 아들
강원도 펀치볼 전사자 황 하사 올림


<수필 본상 수상소감>    
                       
황규석
                   
안녕하세요. 먼저 부족한 글에 수상의 영광을 전해준 제1회 충무공 이순신 호국문학상 운영위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작품 <부모님 전상서>는 언제나 보고 싶은 우리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그리고 그 주체가 바로 6.25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바쳐 조국 산하에 묻힌 국군의 유해가 편지를 하는 형식으로 구성하여 썼습니다.  국방부가 2000년도 유해발굴단을 창설한 이래 발굴한 유해는 약 1만 1천여구인데 그중 신원이 확인되어 유족의 품으로 무사히 귀환한 영령은 162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국군 전사자의 유해가 고향과 부모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금도 펼쳐지고 있는 국군 유해 발굴은 희생자 가족이 DNA 정보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구국의 일념으로 자원입대하여 전장에서 이름 없이 스러진 많은 국군 장병들. 그리고 특히 아직도 저 깊은 강원도 전방 고지에 묻혀 있는 전사자의 마음으로 글을 써나갔습니다. 그래서 더 애가 타고 안타까운 마음에 저 역시도 몰래 눈물이 났습니다.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호국영령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자식을 거두지 못한 부모님의 마음 또한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일까요?

사무치는 그리움을 글을 쓰며 저도 간접적으로 느껴보았습니다. 우연히 찾은 동작동 국립묘지 무명용사의 묘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이 모두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6.25 한국전쟁의 비극적인 상흔은 61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호국의 일념을 행동으로 실천한 우리의 국군장병들과 그 전몰유가족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더 많은 유해가 하루빨리 기다리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응원하고 빌어봅니다.

다시 한번 부족한 글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신 제1회 이순신 호국문학상 운영위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하지만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글로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의 그 큰나라 사랑과 애국 애민의 뜻을 널리 알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