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재미

"어머니 사랑합니다.."

물에 불린 바나나 2014. 9. 3. 22:34

어머님께....



제가 군대에 입대한때는 1988년 6월 10일 더위가 시작되는 때였습니다. 
  
그해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월에 대학에 입학하여 막 신입생환영회하고 
  
엠티다녀오고 참 재밌던때였죠. 전 여학생이 득실대는 불문과에 얼마되지 않은 남학생이었답니다. 
  
그런대로 재밌게 지냈는데 이런 제가 군대에 왜 갔냐구요? 뭐 딱히 이유도 없었어요. 
  
그냥 뭐랄까 작은 영웅심도 있었던가 같아요.그해 1988년은 올림픽의 해였습니다. 
  
"내가 전방에 가서 북한군을 잘 지키면 올림픽을 잘 치를수 있지 않겠니, 애들아 잘 놀아라, 나는 간다!" 
  
병무청에 찾아가서 일반병으로 자원입대서를 쓰고 한달후에 논산 훈련소로 입대를 했답니다.  
  
  
사실 고3때 1987년 민주화 시위가 한창 이던때 전 신문배달을 시작했답니다.  
  
최루가스가 코를 맵게 하고 눈물이 날때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고 뭐 재밌는 일 없을까 하다가 
  
사회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신문 보급소를 찾아가 새벽 신문 배달을 시작한거죠. 물론 용돈도 생기니  
  
좋구요. 하여간 대학학력고사 날도 신문 배달을 했고 대학에 입학해서도 신문 배달을 했고 
  
입대하는 날도 아침에 신문 배달미치고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께는 "군대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어머니와 함께 일하시는 분의 차를 얻어타고 논산 훈련소에 들어갔답니다. 입대할때도 택시 운전하는  
  
아버지는 바쁘셨고 도축장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도 바쁘셔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논산에서 몇일있다가  밤차를 타고 춘천에 가서 보충대에서 화천의 행군 많이 하는 예비사단  
  
00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알고보니 저희 아버지도 저와 같은 부대 출신이더라구요. 
  
  
6주간의 고된 신병훈련을 마치는 날 보고싶은 어머니는 못오시고 
  
아버지와 형님이 퇴소식에 왔습니다. 그리고 30개월 군대 생활하는 동안 훈련소 퇴소식이 처음 면회 
  
이자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정신없던 이등병 시절  정말 많이 맞았네요. 그도 그럴께 
  
"왜 그리 일찍 군대 왔냐?" 고 맞았어요, 제가 69년생인대 호적은 70년으로 되어있거든요. 
  
또 "다들 면회오는데 "너는 뭐라고 면회안오냐?"라고 맞았고 
  
어렵게 동전 모아 공중전화해서 면회한번 와달라고 해놓고 확답도 가족에게 
  
못들었는데 다음주에 면회올거 같다고 말해놓고 그날 안오자 "너 왜 거짓말하냐"며 맞았구요. 
  
면회날 경계근무 서면 가족이나 여자친구가 면회와서 통닭먹고 외출나가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그게 부러운지... 가장 형편이 어려워서 부모님 건강이 안좋아서.. 또 집이 대전인데 
  
화천까지 멀어서 그랬겠지 하면서 나름대로 생각했지만 정말 부러웠습니다. 
  
  
일병을 달고도 면회가 오자 "황일병은 부모가 버린 자식"이란  소문이 들리더라구요. 
  
입대하고 만 1년에서 3일 빠진 6월 7일에  간 첫 정기휴가에서도 부모님은 바쁘게 일하느라 
  
전부 모여 식사한번 제대로 못했었던거 같아요.  
  
상병을 달고선 이제 면회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아예 기대를 하지 않은거죠. 
  
기대를 하지 않으니 조바심 낼 필요도 없었고 다른 선임병, 후임병들 면회나가고 외박나가는거  
  
봐도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오히려 못살게 구는 선임병이 면회를 나가면 그날 저녁은 좀 편 
  
하니까 차라리 면회를 나와 하루 안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후임병들도 면회다녀오면 
  
가끔 음식도 사오고 P.X에도 같이 가서 얻어먹고는 했습니다. 몇번의 유격과 혹한기 훈련 
  
진지보수 훈련 대대종합훈련 등등 멈춘고 하나도 흐르지 않을거 같은 국방부 시계는 어느덧 
  
흘러서 드디어 90년 12월 전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대후 집에서 몇일간은 제일 먹고 싶었던 라면만 줄창 먹었답니다. 계란을 2개씩 넣고요. 
  
그리고 얼마후 선배가 술을 사준다고 나가서 술을 먹었는데 술이 약한 제가 좀 많이 취해서 
  
혼자 2차를 갔습니다. 새로 생긴 꼬치구이집이 었는데 짧은 머리며 말투하며 사장과 이야기하는데 
  
마침 같은 부대를 전역한 선배이셨어요. 그래서 이런 저런 군대 이야기로 소주잔이 오가고... 
  
한참이 지났던거 같아요. 길 바닥이었어요. 쓰러져 자는데 누군가 날 깨우고 전 말이 꼬여서... 
  
속이 쓰리고 목이 말라 일어나보니 집이더라구요. 머리맡에는 만원짜리 두장이 놓여 있고 
  
물병이 있었어요.  
  
  
할머니가 들와서서는 "우리 손자 어제 술 많이 했네.." 하면서 위에 
  
사는 누구 그러니까 제 형의 친구가 절 알아보고 부축해서 끌고 왔다는 거예요.  
  
"난 버린 자식이야"   "버린 자식" "버린 자식" 자꾸 이말을 했다고 하네요. 할머니는 어머니가 
  
밤 늦게 너 토한거 다 치누고 꿀물 먹이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지난밤의 일을 전해주었습니다. 
  
2만원은 어머니가 놓고 일 나가신거 였더라구요....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어머니께 아직도 미안하더라구요 .   
  
저보다 더 마음 졸이고 안타까워했을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했으니까요. 
  
일흔이 훌쩍 넘으신 어머니께도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하세요.  
  
"나도 그때 술취한 니가 한말 가끔 생각이 난다..'난 버린 자식이야.. 내가 미안하지 입대할때도 
  
못가보고 면회한번 못갔으니..." 
  
"죄송해요, 어머니 제가 철부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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