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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존재 배우가 잊어버리게 한다” -마크 리 촬영감독

물에 불린 바나나 2010. 10. 18. 10:33

“카메라의 존재 배우가 잊어버리게 한다”

한겨레 | 입력 2010.10.18 10:20

 




[한겨레] 그와 인연 닿은 감독 수십명


다시 작업하기 원해 러브콜


"매몰되면 아름다움은 끝나


김기덕감독 작품 참여 원해"


촬영감독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 선 마크 리

부산영화제 '마스터클래스'는 영화예술의 거장들이 자기의 영화와 삶을 들려주는 시간. 대만의 마크 리(리핑빈)가 촬영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장이머우,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처럼 마이크 앞에 섰다. 그는 올해 56살로 1985년 허우샤오셴 감독의 < 동년왕사 > 를 시작으로 내로라하는 감독 수십명과 영화 70여편을 찍었다. 허우 감독과는 < 빨간 풍선 > (2007) < 쓰리 타임스 > (2005) < 카페 뤼미에르 > (2003) < 밀레니엄 맘보 > (2001) < 해상화 > (1998) < 남국재견 > (1996) < 희몽인생 > (1993) < 연연풍진 > (1986) < 동년왕사 > (1985) 등 가장 많은 9편을 찍었고 왕자웨이와는 < 화양연화 > (2000) < 타락천사 > (1995) 등 2편을 작업했다. 쉬안화, 왕퉁과도 3편을 찍은 그는 최근 프랑스 질 부르도와 < 애프터워즈 > (2008),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 공기인형 > (2010)을 찍는 등 반경을 넓히고 있다.

그와 한 번 인연이 닿은 감독은 "환몽약을 먹은 것처럼 홀려" 그와 다시 작업하기를 원할 만큼 그의 카메라는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작품의 특성을 잘 살리기로 호가 나 있다. 2000년 53회 칸영화제에서 기술고등위원회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인 상을 9차례 수상했다. 이번 부산영화제에는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 < 바람이 나를 데려다 주리라 > (감독 관펀렁, 치앙슈치웅)가 상영되었다. 12일 오후 부산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 직후 그를 만났다.

- 감독들이 왜 당신과 작업하기 좋아하나?

"다 그런 건 아니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감독들이 나를 좋아한다. 그들은 새로움을 추구하고 변화 대처 능력이 뛰어난 점에서 나와 호흡이 잘 맞는다. 나의 작업방식과 태도를 존중해 일할 수 있는 자율권을 충분히 주었으며 그 결과에 만족하기 때문일 거다."

- 자율권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허우샤오셴은 에이(A)4 10장 안팎의 시놉시스를 주며 어떤 주문을 하지 않은 채 당신의 능력을 보여달라며 맡긴다. 왕자웨이는 몇 가지 힌트를 주지만 그림을 그려주지 않아 내 스스로 플롯을 구성해야 하는 점에서 허우 감독과 비슷하다. 말이 자율이지 사실 무섭다.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작업하는 게 자율이다."

- 작업방식을 설명해 달라.

"로케이션 장소의 자연광과 색깔을 주의 깊게 본다. 가능하면 가장 간단한 광선을 찾아내 그것이 본연의 활력과 생명력을 담고 때로는 증폭해 배우가 최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공간을 마련한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 마음 깊은 것을 건드릴 수 있게끔 한다. 한컷 한컷 시를 쓰는 심정으로 한다. 그리고 후반작업을 위해 구도와 색채 등 당시 상황을 기록한다."

- < 밀레니엄 맘보 > (2001)부터 인공조명을 쓰기 시작했는데….

"조명은 주 광원의 보조일 뿐이다. 2000년 무렵 디지털 환경으로의 큰 변화가 있었다. 영화의 미가 별도 존재가 아닌 만큼 촬영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실험중이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나도 궁금하다. 하지만 외부제한 없이 마음가는 대로 색채, 각도 등 자유롭게 구현하기 위한 것임에는 변함없다. 믿기 어렵겠지만 기자재는 아주 간단하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구현하는 것이다."

- 그 외에 눈높이 찍기 및 몰래찍기처럼 자연스런 촬영으로 유명하다.

"'앵글 없는 앵글'로 정리할 수 있다. 2008년 < 애프터워즈 > 의 뉴욕 번화가 신을 찍을 때, 군중 틈에서 연기자를 잡기 힘들어 높은 앵글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카메라의 존재가 출연자들에게 인식되면 자연스런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해 카메라를 나의 키에 맞춰 연기자 바로 앞에서 찍었다. 촬영자가 앵글을 의식하면 영화 관객도 카메라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 소성지춘 > (2002) 때는 전체를 한 컷으로 찍었다. < 노르웨이의 숲 > (2010) 때는 앵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화면을 구현해 만족스러웠다."

- 쉬안화 감독이 말한 '스타일 없는 촬영감독'이 그런 뜻인가?

"그렇다. 만일 나만의 형식 또는 미학에 매몰되면 무료해지고 아름다움은 곧 끝나버린다. 나는 매번 감독의 사유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작품이 끝나면 다 비운다. 항상 다른 장르로 진입해 새로움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요즘 젊은 감독과 함께 작업하는 게 무척 재밌다."

- 요즘은 무엇에 관심 있나?

"주간용 필름 하나로 실내, 저녁 장면을 찍는 실험을 한다. 현상소에서 혹시 필름을 잘못 끼운 게 아니냐고 물어오고 프로듀서 역시 실수가 아니냐고 말하더라. 하지만 최종 결과를 보고 모두 만족했다. 보통 주간-야간용 구분이 상식화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익숙한 화면에 더이상 감동을 느끼지 않는다."

- 이제 본인이 감독을 선택할 법도 한데….

"영화는 감독의 것이다. 나름 미개척 분야로 지평을 넓혀왔지만 나는 감독이 얼마나 공간을 주느냐에 따라 나타내는 영상이 달라지는 촬영감독이다."

그는 혹시 감독으로 나설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오랫동안 해온 일과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다"며 "젊은 촬영기사들이 시행착오를 않도록 나의 생각과 기술을 전수하는 데 힘쓸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기회가 주어지면 한국의 김기덕 감독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부산/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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