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나라인가 [2010.06.25 제816호]

누구의 나라인가 [2010.06.25 제816호] [만리재에서] ▣ 박용현

1. 당신은 어느 나라 군인인가? 어느 나라 국방부 장관인가? 원인도 모르게 군함 한 대가 침몰한 중대 사건의 발생 시각을 21시15분에서 ‘15’에 볼펜으로 ‘ㄴ자’를 그려넣어 21시45분으로 고쳐 보고한 군인은 어느 나라 군인인가? 제복의 명예를 운운하는 군인 맞나? 스스로 적의 공격에 의한 침몰이라고 밝히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주권자 국민 앞에 고개 한 번 숙이지 않는 당신은 어느 나라 군인인가? 사고 발생 시각에 대한 혼선을 감추기 위해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을 편집해서 발표하도록 지시한 당신은 어느 나라 군인인가? 그것을 사전에 보고받고도 승인한 당신은 어느 나라 국방부 장관인가? 국회가 구성한 특별위원회에서 사건의 진실을 따져묻는 국회의원에게 “북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으시려고 많이 노력하시는 거 같은데…”라고 빈정대는 당신은 어느 나라 국방부 장관인가? 당신은 어느 나라 국무총리인가? 정부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은 비정부기구(NGO)를 향해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문이 생긴다”고 말하는 당신은 어느 나라 국민인가? 섬겨야 할 국민을 향해 ‘당신은 국민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망발하는 당신은 어느 나라 공무원인가? 바야흐로 21세기,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NGO를 협력 대상으로 삼아 활발한 의견 교환을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당신은 어느 나라 고위 공무원인가? 국민은 정부와 다른 의견을 대외적으로 말해선 안 된다고 여기는 당신은 어느 나라 대학 총장 출신의 지식인인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지방선거 패배에 대해 “그것은 ‘대통령의 지지도에 비해서는 참 표가 안 나왔구나’, 또 ‘여러 여론조사 기관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결과가 안 좋았구나’ 하는 그런 의미의 패배라고 느꼈지만 대패라고는 안 느꼈다”고 말하는 당신은 어느 나라 내각 수장인가? 2. 당신은 어느 나라 국민인가? 서울 강남에서 고시원에 살며 노점상을 하다 알 수 없는 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유서 한 장 남기고 잠적했다던 당신은 어느 나라에 살고 있나? 불법 노점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은 그저 법에 따라 즉결 처리를 하고, 하루 몇만원 벌이에 벌금까지 물어야 해서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했다는 당신은 어느 나라에 살고 있나? 손을 다쳐 선원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고 아이들과 같이 살려면 노점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보살펴주는 정부가 없는 당신의 나라는 어디인가? 당신도 ‘대~한민국’을 외치는 저 붉은 길거리에 끼어봤는가? 3. 진정 궁금해진다. 우리는 어느 나라 국민인가? 아무리 부르짖고 투표로 의지를 표현해도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싹 무시당하는 우리는 어느 나라 국민인가? 궁금해 못 견딜 의혹이 있어도 내놓고 질문조차 못하고, 정부와 다른 결론이라도 말할라치면 잡혀갈까 두려워해야 하는 우리는 어느 나라 국민인가? 전투기는 또 추락하고 군함은 어뢰를 맞아 가라앉았다는데도 고개 빳빳하게 들고 다니는 군인들의 서슬 퍼런 표정에 움찔해야 하는 우리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국민인가?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