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길

[스크랩] 여름을 기억하며(2) 종점에서...

물에 불린 바나나 2011. 11. 12. 23:38
<은하철도 999>

철이, 메텔,
그리고 그 얼빵하지만 의리깊은 차장,
그리고 무서운 화석화 개스구름.
가끔 훌렁 벗고 있는 메텔같은 외모의 인물이 나오거나
철이 같이 생겼으나 주먹 메부리코 철이가 아닌 모습도 나왔었다.....
남동생에게 그 장난감을 선물한데 20여년도 훨씬 이전의 일이다.
장난감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종이에 철길이 하늘을 향해 얼마가
나있는 받침대와 열차의 앞머리는 크고 꼬리는 역시 가물가물한
기차가 용솟음치듯 달려나가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당시 국민학교 2학년이던 동생에게 그 아카데미 과학사 장남감을
선물을 했다. 그리고 만들어 주었다.
어쨌거나 기차는 엄마를 찾아 달리고 달렸다.



<하금리, 종점>

외가댁 시골은 버스의 좀점이었다.
읍네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도 족히 40여분은 더 들어갔는데
어릴때 느끼는 30-40분은 지금과 더 길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길이 비포장 도로였을때는
집입하는 분위기는 더 다르다.
하얀 먼지를 달고 뭉게구름을 피우듯 달려오는 버스의
덜컹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 아랫 마을의 아이가 둘이나 빠져죽었다는 드문동이라는
제일 깊은 개울에 산다는 30년 묵은 커다란 자라도
땅의 진동을 통해서 이방인의 입성을 알아채고 깊은
검은 물속으로 자멕질하여 들어갔으리라.
그 이야기를 해주던 외삼촌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지도 이제
20여년 전이다. 비포장길은 포장이 아직도 다 되지 않았으나
차들이 많이 다녀서 알맞게 맨들맨들해졌다.

시골버스는 우리 외가집 위에서 코랑지를 감추고 커다랗게 원을
그리고 돌아서 나온다. 버스가 머리를 들이밀때 차탈 준비를 하여
종점에서 버스의 앞머리 타이어가 진흙탕에 좀 머드팩을 하고 나올때야
몇가구 안되는 마을 사람들이 조용히 내리거나 다시 읍내로 도시로
나가는 아저씨나 형들이나 누나들이 버스를 타러 정거장에 나가곤 했다.
월요일 출근을 위해서 그리고 등교를 위해서...

종점의 정거장은 따로 없다.
좁은 비포장길에서 달구지 하나 정도 지나
갈만하고 사람들이 서 있을 만한 곳이 바로 정거장이었고
종점이었다.
거기에는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가 서이었다.
아이들 5-6명이 팔을 엮어도 한번에 두를수 없는...
아주 커다란... 감나무가 말이다..

외삼촌이 보고 싶다.
나도 외삼촌이 벌써 되었지만 나는 일찍 소리없이 땅으로들어간
외삼촌이 따와 삶아준 옥수수와 잡오온 메기를 가지고 외숙모가
끌여준 국수가 같이 둥둥떠있는 그 얼큰한 매운탕이 그립다.
외삼촌의 묘는 그러나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종점에서도 한참을 걸어들어가야한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교복을
입고다닐무렵인가 갑자기 삼촌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단다.



<장암>

7호선 종점 장암에 들렀다...
제일 큰 유리창이 달린 전철을 타면서 이 곳 장암 종점에 가보고 싶었다.
의정부 북부는 종종 내달려 갔던곳이었으니 장암은 처음이다.
초-원!
풀~들의 밭.
장암차량기지는 커다란 초원같았다.
플밭이 펼쳐지고 막 힘든 거의 40여개가 되는
정거장을 지나쳐 온 많은 열차들이 숨을 고르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다.
늦여름의 푸르름이 만끽하는 그곳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척이나 조용하고 아늑하게 한산하게 느껴진다.

내가 서울도시철도 공사장이었다면 하이얀 곱습머리
양떼들 아니면 덩치큰 젖소무리들 아니면
눈망울이 이쁜 한우무리들을 풀어서 놓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그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었을 것이고
어미 소는 송아지들을 위해 젖을 물리고 있었으리라.
한가로이 앉아서 플을 뜯는 양대와 소때들이 보고 싶다.
차량기지가 그리 넓게 잘 조성되었고 수락산 끝자락에 위치하여서
나는 그런 터무니 없는 그러나 즐거운 상상을 해보았다.

전철서 내려서 플랫폼에서 주변을 바라보다가 내가 타고온
전철을 다시 탔다. 문이 다시 열리면서... 등산객들도 다 사라지고
종점에서 나가는 차는 승객이 몇명 없다.
난 편한 자리에 앉는다. 자리에 누워보고 싶은 충동도 느낀다.
이윽고 전철이 출발하고 스르르 천천히 코너를 돌때
이쁜 커다란 창에는 주유소에 있는
차량 세척기처럼 전차의 길이와 덩치에 맞게
커다란 전철세차기를 볼 수 있었다.
전차들의 샤워장.

난 다시 집으로 온다. 오른쪽에는 수락산 왼편에 도봉산이
마주보다가 이제 내가 돌아나갈때는
반대로 수락산이 밥먹는 손, 도봉산이 왼쪽에 자리잡아
가만히 텅빈 객차에 홀로 앉은 나를 물끄러니 내려다 바라본다.
실상 둘이 나뉠 이유는 없다. 뿌리는 같은 것일거다.
나는 또 아무말없는 장중한 두 산자락의 가운데서 그 들의
늦여름 옷매무새를 천천히 지켜본다.
턱을 괴고 바라보면 앉은 키의 산이 보인다.
적막한 산자락이 입은 여름옷은 코발트 블루보다
깊은 파란 물이 들어있었다.
어느새 나는 그 7호선 빈자리를 추원의 풀밭삼아 가로로 누워앉아
산자락을 들춰보고 있었다...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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