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걷기

[스크랩] 1년전, Alex, 가시에 찔리다

물에 불린 바나나 2011. 11. 8. 12:52

1년전,

일기장을 꺼내어 읽어본다.


2005년 8월 2일 화요일 맑음


피로한 ALEX, 가시에 찔리다


아침 8시가 좀 넘어서 깨었다.

어젯밤에는 쉬라고 하더니 일을 한다고 한다.

시드니에서의 3일, 거기서 이틀은 내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안에서 였다. 피곤했다.

장소는 역시 엔젤락. 한기가 올라와서 떨면서 잠을 잤다.

그나마 바닥에 깔았던 얇은 담요를 걷어 덮고 자서 추위를 좀 덜 탔다.

아직 추운 겨울이다.

거실서 자는 리키는 심하게 코를 골며 뒤척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할까... 돈도 아끼고 싶었다.

역시 전날 폴과 먹은 맥주가 덜 깨서 인가보다.

나로 말하자면 최근에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여튼 내가 부스스 옷을 입으니까 리키도 그 큰 몸을 일으켰다.

오렌지 8빈(박스)를 땄다. 나무가 작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피곤해서 그런지 사다리에 오르니 공중에 붕 떠서 일하는 기분이었다.

시차(시드니와 여기 밀두라는 2시간여 차이)도 있구... 여독이 풀리지 않아

너무 피곤했다. 그래도 놀면 뭐하나. 고생했지만 일주일 방세를 번 것같아

위로가 됐다.


---------- 중 략 ----------


저녁을 얻어먹은

폴의 집에서 나와 울워스(대형 수퍼마켓)에 천천히 걸어가서 쇼핑을 했다.

돈 생각 안하고 사고 싶은 것을 고라 담았더니 글쎄 76달러. 아악!

단 호박과 양배추는 뺐다. 그래서 70불하고 50센트.

이걸로 10일 이상 버텨야지. 김치 담근것두 남았으니...

 



가시에 찔린 것을 확인한것은 집에 와서다. 손마디 굽히기가 힘들어

왼손 엄지 손가락의 반달형 무늬를 살펴보니 검은 무엇이 들어있었다.

그것 때문에 통증이 있었던 것이다. 식칼로 손톱을 긁어서 파냈다.

너무나 많이 흔하게 열린 달콤한 오렌지 나무의 가시.

그것이 헤퍼보이는 오렌지의 유일한 방어본능일까?

 

농장 한쪽의 낡은 도요타 승합차안의 아이들을 보았다. 아마 리키나 폴 처럼

사모아나 통가에서 온 농장 노동자의 아이들이겠지.

순간 신경이 거슬리기도 했지만.... 그들의 부모들로서는

그렇지 않고서는 아이를 키울 방법이 없는 일이다.

그들 역시 노동자가 될 운명이다. 아이들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우리가 잘 산다고, 기계문명이니 컴퓨터니 떠들며 우수한 민족이다

하지만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에 적응해 천성대로 사는 거니까....

 



아참, 울 워스에서 여름에 일했던 농장의 보스 랄프를 보았다.

그 욕심장이 배불뚝이 랄프. 주급의 동전마져 잘 챙겨주지 않던 사람.

그도 혼자 쇼핑을 하고 있었다. 그리 반갑지 않은 어색한 마주침.

가볍게 인사를 했다. 어디서 일하냐고 하길래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좋아보인다고 애둘러 말했다. 마주치지 말걸...

 

새벽 2시,

잠을 자야하는데.... 리키는 또 맥주 한 박스를 거의 해치우고

퍼질러 자고있다. 저건 사람이 아니라 곰이다.

인디언이 나와 총쏘는 서부영화가 테레비에 나온다.

손가락이 쓰리다.

어느새 검붉은 멍이 들어있었다.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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